입춘대길 -이덕일
- 조선의 사형수들은 입춘을 학수고대했다. ‘태종실록’ 13년(1413) 11월조의 ‘금형(禁刑)하는 날의 법’에 따르면 ‘입춘에서 춘분(春分)까지’ 사형을 정지했다. 춘분부터 추분(秋分)까지는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서 사형집행을 금했으므로 입춘까지만 살아남으면 가을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대사령(大赦令)이라도 내리면 석방되거나 감형될 수도 있었다.
입춘날 대궐에서는 홍문관 지제교(知製敎)가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중에 수작(秀作)을 선택해 연잎과 연꽃무늬가 있는 종이에 써서 궁문(宮門)에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고 했다. 이 시를 춘련(春聯)이라고 했는데 호문(好文) 군주 성종(成宗)은 재위 13년(1482) “궁문은 하나가 아니며 시를 짓는 자도 많다”면서 여러 수의 춘련을 지어 붙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문신들은 오언절구뿐 아니라 칠언율시(律詩)까지 짓느라 여러 날 동안 사무를 폐하고 시구를 다듬는 일이 발생했다. 홍문관 직제학(直提學) 김응기(金應箕) 등이 전례대로 오언절구 하나만을 취하자는 차자(箚子)를 올렸으나 성종은 거부했다.
대궐의 춘첩자를 본떠서 일반 민가에서 대문에 붙이는 글을 춘축(春祝), 또는 입춘문(立春文)이라고 했다. 민간의 입춘문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국태민안(國泰民安)’ ‘안과태평(安過太平)’같은 구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사대부가에서 비단으로 작은 기[幡]를 만들어 집안 사람들의 머리에 달거나 꽃나무 가지 아래에 거는 것을 춘번(春幡)이라 했다.
이날 경기도의 산간 군현인 포천·양근·가평·연천·지평·삭녕에서는 산개(山芥:멧갓) 등을 진상했다. 산개는 초봄에 산속에서 자라는 개자(芥子:겨자)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멧갓을 더운 물에 데쳐 초장에 무치면 매운 맛이 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은 뒷맛으로 좋다고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는 입춘날 농가에서 보리 뿌리를 캐어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전한다.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내일(4일)은 입춘이다. 세 가닥 이상의 뿌리가 나와 대길하기를 기원한다.
'문화,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국굴기 (0) | 2007.02.05 |
|---|---|
| 공자를 다시 본다. (0) | 2007.02.04 |
| 임진왜란 -계월향 초상 발견 (0) | 2007.02.03 |
| 시물레이션 문화시대 (0) | 2007.02.03 |
| 추사 전시회 (0) | 2007.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