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6>노동자를 춤추게 하는 일터
![]() 그레이트 배치의 배터리 생산라인 직원들. 하루 작업을 막 마치고 나왔는데도 이들의 얼굴에선 피로가 아닌 즐거움이 묻어났다. 사진 제공 그레이트 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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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물고기 인형?’ 지난달 26일 미국 뉴욕 주 올던 시에 있는 배터리 회사 ‘그레이트 배치’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직원들 책상 위 여기저기에 놓인 물고기 인형이었다.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물고기 캐릭터와 꼭 닮은 인형들. 파란색, 자주색, 노란색, 주황색 등 색깔도 다양한 인형들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것부터 팔뚝 크기까지 다양했다. “‘영광의 물고기’들이에요.(웃음) 동료들로부터 ‘이 친구는 칭찬받아야 돼요’라고 만장일치로 추천을 받은 직원에게 주어지거든요.”(인력관리 매니저 르나이 쿠온즈 씨) 1970년 세워진 그레이트 배치는 사람 몸 안에 들어가는 의료기기용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다. 창업주 그레이트 배치는 세계 최초로 인체 삽입용 심장박동기를 개발한 인물. 현재 미국, 멕시코 공장에 18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수십 종의 의료용 배터리를 개발하며 이 부문 전 세계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레이트 배치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고유의 ‘기술력’만이 아니다. 이 회사는 뉴욕 주의 기업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노사관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그레이트 배치의 슬로건은 ‘삶을 위한 에너지(Energy for Life)’.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는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삶, 경영원칙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일터
그레이트 배치에서는 ‘무슨 무슨 날’이 많다. ‘감사의 날(Thank you Day)’ ‘회사 개방의 날(Open House Day)’ ‘핫도그의 날’ ‘스포츠의 날’…. 이런 날들이면 노사가 함께 모여 즐긴다.
‘감사의 날’에 직원들은 평소 고마웠던 동료나 상사 또는 후배에게 카드를 쓰고 작은 초콜릿이나 사탕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번 내가 작업량이 많아 힘들었는데 같이 남아 도와줘서 고마워.’
카드에 적힌 감사의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지만 동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담은 것이다.
회사 개방의 날에는 직원 모두가 자신의 가족을 회사로 초청한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가족에게 내가 일하는 곳과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 주면서 자부심이 생겼다.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회사 개방의 날이면 경영진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회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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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엔 경영진, 생산직원, 사무직원, 단순 파트타임 종업원까지 다양한 회사 구성원으로 이뤄진 ‘인지팀(Recognition Team)’이 있다. 이들의 임무는 회사가 감사를 표해야 할 직원들을 알아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경기나 영화관람 티켓, 패밀리 레스토랑 식사권 등을 선물하는 것이다.
“선물이라야 비싼 것도 아닙니다. 선발된 직원들이 감동하는 건 회사와 동료들이 열심히 일한 자신을 알아준다는 점이죠.”(쿠온즈 씨)
그레이트 배치에서 ‘즐거움’만큼이나 강조되는 것은 ‘건강하게 살기(Wellness)’다.
미국의 의료보장시스템에서 근로자의 건강보험료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본인과 함께 부담한다. 많게는 근로자 1인당 연평균 1만 달러(약 1000만 원)가 기업 부담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은 언제나 미국 노사관계에서 가장 큰 갈등 요인이 돼 왔다.
그런데 그레이트 배치는 이 문제를 근본부터 다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회사가 마련한 건강하게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에겐 대가로 본인이 부담한 일정 부분의 건강보험료를 돌려주는 것.
“회사가 마련해준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거나 건강식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돼요. 하다못해 조깅이나 개 산책 같은 운동만 해도 1년간 적게는 60달러에서 많게는 240달러의 돈을 되돌려 받아요.”
혜택은 직원 가족들에게도 적용돼 4인 가족의 경우 최대 1000달러 가까운 돈을 받을 수 있다.
○ 일은 엄정하게, 소통은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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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을 지나 실제 배터리 생산라인이 돌아가고 있는 통제구역으로 들어섰다. 공장은 비행기 안처럼 건조했다. 현장 직원은 “배터리 재료인 리튬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수분과 닿으면 큰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음료수는커녕 습기 유입조차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트 배치는 생명을 대신할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 0.001%의 오류도 허용될 수 없는 제품을 만드는 현장의 분위기는 엄숙할 정도였다.
알록달록 물고기 인형과 맛있는 음식, 자유로운 복장이 있는 바깥과 달리 이곳에선 최고의 업무 완성도와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다.
제품 기술과 생산 환경 개선은 노사가 함께 만든 ‘열린 아이디어 제도(Open door policy)’를 통해 극대화되고 있었다.
공장장 에릭 생어 씨는 “직원들은 회사 내 어떤 분야,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든 거리낌 없이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나 고충을 얘기할 수 있으며 모든 의견은 직원 토론을 통해 타당성을 따져본 뒤 제품과 작업 현장, 회사 경영 방침에 바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새로운 작업 패턴이나 회사 제도가 수백 개, 신기술만도 수십 개다.
그레이트 배치의 여성 수석 엔지니어인 제니퍼 볼트 씨는 “회사는 내 가치를 제대로 존중해 주려 노력한다”며 “임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트 배치가 ‘물고기’로 대표되는 새 경영철학을 도입한 지 5년. 그새 생산성은 두 배 이상 높아졌고 제품의 질과 회사의 기술력은 매년 향상되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의 시간 내 제품 완성률은 99%였고, 제품 하자율은 0%에 가까웠다.
■ 왜 물고기 경영인가
‘글로벌 고용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선진 공업국의 노동계는 이제 일방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 기업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탈할 경우 아예 일자리를 잃는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업무 만족 없이 기업의 경쟁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각 기업이 임금 이외의 방식으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고민하는 이유다.
미국 경영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물고기 철학(Fish Philosophy)’은 그런 방안 가운데 하나다. 이는 2000년 미국에서 출판된 책 ‘Fish’가 담고 있는 기업조직관리 철학으로, 경영컨설턴트 켄 블랜처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조직관리 철학의 맥을 잇는 주장이다.
그 핵심은 ‘기업은 직원들이 마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에너지 넘치게, 또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철학은 많은 현대인이 삶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혹은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하며 보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무리 많은 월급을 받아도 일터가 고통스러우면 삶이 불행하다. 그렇게 느끼는 직원들로 가득한 기업 역시 성공할 수 없다.
물고기 철학이 성공을 원하는 기업에 제시하는 조직 활성화 방법은 네 가지다.
첫째, 직원들이 자신의 하루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직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거리를 찾을 것. ‘일이 곧 재미’로 느껴지기 시작하면 임금이 아니라 일 자체가 보상과 만족이 된다는 설명이다.
셋째, 직원들의 날을 만들어 줄 것. 구성원 모두가 주인공이 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조직 안에 밝고 협조적인 분위기를 장려하라는 조언이다.
넷째, 직원들의 곁에 있을 것. 회사 구성원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의견과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다.
‘물고기 철학’은 그레이트 배치를 비롯해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 3M, BMW, 노키아 등의 경영진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디트로이트·버펄로(미국)=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사이타마·도쿄(일본)=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독일), 파리(프랑스)=이은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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