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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을 찾아서

소쇄원에서 3

 

 

 

제4장 대숲 바람 부는 소쇄원에서(3)

 

  제월당 방안에서 도연명과 주돈이에 빠지다.


  제월당은 높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세칸 측면 한 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간결한 집이다. 거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있다. 문화해설사 한분이 소쇄원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도 하고 있다.


  제월당.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 같은 집.

  이 이름은 중국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1045~1105)이 성리학자 주돈이(1017~1073)의 인품 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가 갠 뒤 해가 뜨면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胸懷灑落 如光風霽月)고 말 한데서 따 온 이름이다.


  제월당은 두 칸의 마루와 한 칸의 방으로 되어 있는데 주인이 거처하며 독서하던 곳이었다. 나는 마루에 올라 제월당 현판을 보고서 먼저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 내부에는 벽에 글씨가 여러 폭 붙어 있고 소치 허련의 난초 그림도 있으며, 천장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있다.

  나는 벽에 붙은 한문 글씨를 좀 더 자세히 본다. 거기에는 <귀거래혜...>로 라고 써진 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남북조 시대에 살았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이다. 양산보는 평소에 은일시인(隱逸詩人) 도연명을 흠모하여 <귀거래사>와 <오류선생전>, <독산해경>을 즐겨 읽고 도연명 같은 삶을 살려고 하였다 한다.


  도연명. 

  이름이 잠이고 자가 연명인 그는 현 중국 강서성 구강시(九江市) 일대의 심양 시상(柴桑)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시상은 양자강의 중류에 있으며 북으로는 명산(名山) 여산을 등에 업고 남으로는 파양호를 바라보고 있는 명승지이다. 그는 29세부터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얼마 후 그만두었고, 그 후에도 몇 번의 벼슬을 하였으나 그만 두다가,  41세에 팽택 현령을 사직한 뒤에는 두 번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그가 쓴 <귀거래혜사 (보통 귀거래사라고 한다)>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도연명은 63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23년간을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은일시인(隱逸詩人),’ 혹은 ‘전원시인(田園詩人)’이라는 평에 걸맞게 많은 시문을 남기었다.  


  그가 살았던 시절인 동진 말에서 송나라 초는 왕실의 세력이 약화되고 군인세력이 커진 때였으며 농민 봉기와 반란, 그리고 사회혼란으로 백성들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리고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의 문제를 고민하는 도연명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귀거래사는 도연명이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 현령 자리를 80일 만에 그만두고 고향인 강서성 심양 시상(柴桑)에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고,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도연명은 이 <귀거래사> 서문에서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양(梁)의 소명태자 소통의 <도연명전>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정중하게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 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여 사직하였다고 적혀있다. 


  그러면 이 기회에 중국문학의 진수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제월당 방 벽에 붙어 있는 <귀거래사>를 한번 음미하여 보자.


귀거래혜사


자, 돌아가자. 歸去來兮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내가 잘못하여 스스로 벼슬살이를 하였고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괴롭혔거늘 어찌 혼자 한탄하고 슬퍼만 하겠는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았노라.

(중략)

마침내 저 멀리 나의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나는 기쁜 마음에 뛰었다. 머슴아이가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 자식들은 문에서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온통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다. (三徑就荒 松菊猶存)


  귀거래사를 여기까지 읽다가 ‘삼경취황 송국유존’이란 말이 눈에 익다. 세 갈래 작은 길, 삼경(三徑). 이 말은 한나라의 연주자사 장후가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면서 정원 안에 소나무, 대나무, 국화가 심어진 세 갈래 길을 내 놓고, 구중과 양중이라는 친구만 오게 하여 놀았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로, 나중에는 은자의 거처를 삼경이라고 하였다.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도 시들지 않았음은 그만큼 은자의 절개가 굳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어서 나는 시를 계속 읽는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하다. 

술 단지를 끌어당겨 혼자 자작하여 술을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남쪽들을 내다보며 의기 양양해하니,

참으로 무릎 하나 들어갈 정도의 좁은 내 집이지만 안빈낙도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전원을 매일 거닐며 손질을 하자 제법 운치 있게 되었다.

또 대문이 있기는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어 노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때로는 고개를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무심한  구름은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저녁에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중략)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부귀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오.

또 죽은 후에 천제가 사는 천국에서 살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때가 좋다 생각되면 혼자 나가서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랴.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이렇게  <귀거래사>는 끝난다.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랴.(‘료승화이귀진 聊乘化以歸盡’하니  ‘낙부천명부해의 樂夫天命復奚疑’라)‘. <귀거래사>의 마지막 구절은 마치 장자가 역설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선언 같다. (여기서 화(化)는 자연의 변화를 뜻하고, 진(盡)은 인생의 다함 곧 죽음을 뜻한다. 부해의(復奚疑)는 다시 의심을 하여 무엇하리! 란 말이다.) 세상이 천명에 따라 조화의 수레를 타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는 것인데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망설이랴.

  갑자기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 노래가 생각난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자연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귀거래를 한 도연명은 농사일을 하고 평소 좋아하던 술을 주로 혼자 마시고 책 읽기를 즐기면서 스스로를 오류선생이라고 칭하였다. 스스로 농사일을 하면서 쓴 시가 <귀원전거(歸園田居) 5수>이고, 술을 즐겨 마시면서 지은 시가 <음주(飮酒) 20수>이며,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여러 세상을 안 것이 <독산해경(讀山海經) 13수>이다.


  그러면  먼저 <귀원전거>시 한 수를 감상하자.


남산 기슭에 콩을 심었으나

풀만 무성하고 싹이 나지 않아

새벽에 일어나 거친 밭을 손질하고

달과 더불어 호미 메고 돌아오노라

발길 좁고 풀 나무 우거져

밤이슬 적시지만

옷 젖는 것 아깝지 않고

오직 농사일만 잘 되기만 바랄뿐


  이제 도연명은 고향에 와서 스스로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콩을 심었으나 풀만 무성하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까지 밭갈이를 하고 옷을 적시나 농사는 별로이다. 


  한편 그는 술을 즐겼다. 맨 정신으로는 헝클어진 속세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였을까? 그는 홀로 술을 마시면서 시를 지었는데 그 시들이 <음주 20수>이다. 그중에서 제7수인 ‘국화와 술에 관한 시’는 백미이다.


가을 국화 빛이 너무 아름다워

이슬 젖은 꽃잎을 따서

수심 잊게 하는 이 술에 띄워 마시니

속세 잊어버린 이내 심정 더욱 깊어라

술잔 하나로 홀로 마시다 취하니

빈 술 단지와 더불어 쓰러지노라

해도 지고 만물이 쉴 무렵에

숲을 향해 돌아오는 새

동쪽 창 아래에서 후련한 마음으로 시를 읊조리니

새삼 참 삶을 되찾는 듯하여라.


  또한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책 읽기를 즐겼다. 때로는 밥 먹는 것도 잊고서 책을 보았다. 그런 시가 <독산해경(讀山海經) 13수>이다. <독산해경> 제1수를 감상하여 보자. 


초여름이라 초목이 자라서,      

 집 주위로 우거졌네.

 뭇 새들은 깃들 곳이 있어 즐겁고,

 나 또한 오두막집에 돌아와 좋구나.

 밭 갈고 씨 뿌리고 하는 중에,

 때때로 집에 돌아와 책 읽는다네.

 외진 곳 귀한 손님 올 리 없고,

 친한 벗님네나 찾아들까.

 반갑게 봄 술 따르고, 

 터 밭의 푸성귀를 뜯노라.

 보슬비 동쪽에서 내려오자 ,

 훈훈한 바람도 함께 분다.

 주왕전을 대충 보고,

 산해경 그림도  훑어보네.

 잠깐 사이에 우주를 다 둘러보니 ,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자연과 술과 책 그리고 우주와 고독이 함께 있는 시이다. 비록 농촌에 살고 있으나 책을 통하여 우주를 섭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이다.  


(<산해경(산해경)>은 중국 한나라 이전인 태고 때의 지리 풍물을 광범위하게 적은 박물지이다. 거기에는 산천, 도로, 민족, 물산, 무속, 약물 등 풍물이  광범위하게 적혀 있고, 기괴한 사람 신선, 동식물 등도 있어 신화나 전설의 근원을 이루는 책이다. <주왕전(周王傳)>은 주나라 왕 목왕이 팔준마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곤륜산에서 서왕모(西王母)-중국 도교의 신화에 나오는 불사(不死)의 여왕으로서 원래 사람 모습에 표범 꼬리와 호랑이 이빨을 가진 산신령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였다 함-를 만난 이야기를 적은 목천자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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