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장미의 숲
언제 한번 가려고 하는 곳입니다.
다른 자료에서 퍼 왔습니다.
서울 방배동의 세칭 ‘카페골목’을 배회하다 그 어지럼과 현란함에 지칠때쯤 되면 거리 끝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장미의 숲’ 간판을 만난다.
이름만 보고 붉은 장미 가득한 영국식 정원 같은 예쁜 곳을 생각하고 들어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 지난 1978년 개업 이래 거의 바뀌지 않은 레스토랑 내부는 낡은 적벽돌과 삐걱거릴 듯한 귀퉁이 닳은 의자와 탁자로 짜여져 있다. 탁자 위로 늘어뜨려져 어둑한 빛을 발하는 장미모양 전등갓과 밀실안의 알록달록한 소파…. 비록 신세대 취향은 아니지만 낡고 오래된 느낌보다는 왠지 고풍스럽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틀스의 앨범 재킷에 등장하는 ‘오래됐지만 좋은 것(Oldies but Goodies)’이란 문구가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이런 변함없는 모습은, 그러나 20여년간 버텨온 이 집의 분위기를 여일하게 하는 것들이다. 평범함은 칙칙함이 아닌 늘 만나는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오래됨은 촌스러움이 아닌 10년 넘게 입어온 트렌치코트 같은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비싼 돈주고 외국에서 들여온 앤틱 소품으로 치장한 고급레스토랑들의 ‘박제된’ 고풍스러움이 아니라 살냄새 나는 친근한 분위기다.
장미의 숲은 원래 73년 동부이촌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78년 한강 다리를 건너와 이곳에 자리잡았다. 지금의 카페골목이 생기기 전 아직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던 방배동에 거의 처음으로 문을 연 레스토랑이었다. 카페골목의 오늘이 있게 한 ‘효시’인 셈이다. 동부이촌동 시절 단골들은 질척질척한 진흙밭을 한참이나 걸어서 이곳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70년대 말과 80년대를 거치며 예술가들과 문인들, 연예인들이 즐겨찾으며 이곳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장안의 멋쟁이들 사이에서는 이곳을 모르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춥고 삭막하던 80년대 갈곳 마땅찮았던 이들은 이곳에 모여들어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했고, 인생을 논했으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다. 이곳을 거쳐간 유명인들만 해도 작가 김주영 김홍신, 성악가 박인수, 전위예술가 고(故) 정찬승, 화가 김병종, 조각가 신현중, 만화가 고우영, 가수 패티김 김준 조영남, 탤런트 이덕화, 정치인 조순 정대철씨 등 100명이 훌쩍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종종 이곳을 찾아 예전의 추억을 떠올린다. 김준은 이곳을 주제로 한 노래까지 만들어 패티김에게 선사했다니 단골들의 이 집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80년대 이 일대가 젊음의 거리로 흥청거리다 그 젊은이들이 90년대 초 압구정동으로 옮겨가던 때도,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사라져갈 때도 장미의 숲은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곳에 남아있었다.
단골들이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집의 ‘언제나 똑같은’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개업 당시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인테리어와 옛날 맛을 그대로 내는 음식, 20여년간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결같이 손님들을 모시는 지배인 황용만씨 등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다. 재즈가수 김준이 종종 들러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풍경은 이제 사라졌지만 앤디 윌리엄스와 토니 베넷, 패티김, 현미 등의 노래는 여전히 올드팬들의 귀를 울리고 있다.
“지금도 누군가를 만날 때면 항상 이곳을 찾곤합니다. 언제 누구와 함께 가도 항상 그 느낌 그대로, 언제나 맘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죠”. 단골 손님인 김수자 수원여대 교수는 “먼지는 쌓였으되 지저분하지 않고 옛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이곳을 말했다.
황용만 지배인은 20년간 이곳을 지켜온 장미의 숲 역사의 산증인. 나비넥타이를 매고 손님들에게 음식과 커피를 날라다주던 노총각 황씨는 이제 50줄에 들어섰다. 수많은 단골들을 서빙한 그는 이제 어느 손님이 찾아오면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지, 와인은 무엇을 마시고 커피는 어떻게 마시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다. 70이 넘은 손님들은 이미 중년의 신사가 돼버린 황씨를 지금도 ‘황군’이라 부른다. 황씨도 그같은 호칭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대를 이어 찾는 가족들도 황씨에겐 소중한 손님들이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왔던 초등학생들이 이제는 결혼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는 ‘아저씨, 아직도 그대로시네요’할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음식맛 역시 이곳의 자랑이다. 미군부대에서 양식을 정통으로 배운 초대주방장 박경선씨(작고)의 뒤를 이은 주방장들이 3대째 옛날 방식 그대로 음식을 내온다. 재료구입부터 양념 하나하나까지 최고만 고집한다는 이곳의 음식철학은 세월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결코 타협할 수 없다. “입맛이 까다로운 손님들이 많습니다. 음식맛이 조금만 변해도 금방 알아차리시거든요. 어느것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가 없습니다. 돈 좀 더 벌려고 싼 재료를 쓴다는 건 생각조차 못합니다”. 김성훈 사장(55)의 설명이다. 장미의 숲은 현재 남아있는 일반 음식점 중 최초로 피자를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피자집이 생겨나고 있지만 옛날 방식대로 구워내는 이 집의 ‘이태리 빈대떡’ 맛은 여전히 남다르다.
보너스 하나. 장미의 숲에서는 여성 고객들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선사하는 로맨틱한 전통이 개업 초부터 계속되어 온다. 노련한 웨이터들이 눈치를 살펴 분위기 좋은 커플손님의 남성에게 장미꽃을 건네면 남성이 상대방에게 꽃을 바치는 식이다. 지금도 단골 노부부들이 웨이터들에게 장미꽃을 받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단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장미의 숲도 요즘 들어 조그만 변신을 시도중이다. 이태리 정통요리를 선보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사장은 “세상이 변하고 입맛도 조금씩 달라지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단골손님들의 기대를 저버릴 만큼 조급하게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박한 문화가 판을 치는 잡목숲속에 남은 한송이 장미처럼 장미의 숲은 70~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을 맞으며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내 마음 야릇할 때 즐겨찾는 장미의 숲/그곳엔 언제나 장밋빛 꿈결/그님을 보고플 때 약속하던 장미의 숲/낮이나 밤이나 사랑의 물결/어쩌다 마주보는 수줍은 눈길엔 미소가 가득 사랑이 있네/살며시 스쳐가는 그녀의 옷깃엔 나를 부르는 장미꽃 향기…”(패티김의 노래 ‘장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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