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도 쉬고 있는 식영정(息影亭)에서 (3)
- 성산별곡비에서
식영정 뒤편에는 <성산별곡비>가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낙랑장송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둘레가 너무 두터워 한 오백년은 됨직하다. 그런데 <성산별곡비>가 엄청 커서 낙락장송 소나무가 오히려 기가 죽어 있다. 유홍준은 이 비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식영정의 날벼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산별곡>은 송강 정철이 서하당 김성원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부러워하면서 성산의 아름다움과 춘하추동 4계절 경치의 변화를 읊은 강호은일 가사이다.
나는 비 앞에 다가가서 앞면에 있는 <성산별곡> 전문을 읽는다.
성산별곡
어떤 길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오신가.
(중략)
산중에 책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 아래 펼친 경치 철철이 나타나니
듣거니 보거니 모두가 선계(仙界)로다.
이 부분은 서사이다. 서하당, 식영정에 머물며 숨어사는 주인 김성원의 풍류와 기상, 그리고 식영정의 자연경관을 노래하고 있다.
매화창 아침볕의 향기에 잠을 깨니
산 늙은이의 할 일이 아주 없지는 아니하다
울밑 양지 편에 오이씨 뿌려두고
매거니 돋우거니 비온 김에 손질하니
청문고사(靑門故事)가 지금도 있다 하리
서둘러 짚신 신고 대지팡이 흩어 짚으니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었구나.
맑게 닦은 거울 속 절로 그린 돌 병풍
그림자 벗을 삼고 서하로 내려가니
도원이 여기로다 무릉은 어디멘고.
서사에 이어 송강은 성삼의 봄 경치와 주인공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매화 향기와 오이 농사, 그리고 도화 핀 방초주 등이 가히 무릉도원이다.
남풍이 잠깐 불어 녹음을 헤쳐내니
철 아는 꾀꼬리는 어디에서 왔었던고
희황 베개 위에 선잠을 얼핏 깨니,
공중의 젖은 난간이 물 위에 떠 있구나.
삼베옷을 여며 입고 갈건을 비껴 쓰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기대면서 보는 것이 고기로다.
하룻밤 비 온 뒤에 붉은 연꽃과 흰 연꽃이 섞어 피니,
바람기가 없어서 모든 산이 향기로다.
염계를 마주보아 태극을 묻는 듯
태을 진인이 옥자를 헤쳤는 듯
노자암 바라보며 자미탄 곁에 두고
장송을 차일 삼아 돌길에 앉아보니
인간 세상 유월 달이 여기는 가을이로다.
청강에 떠 있는 오리가 흰 모래에 옮겨 앉아,
흰 갈매기를 벗삼고 잠깰 줄을 모르나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과 비교하여 어떤가.
이제 계절은 여름으로서 신선하고 한가한 성산의 여름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오동나무 사이로 가을달이 사경에 돋아오니,
천암만학이 낮보다도 더 아름답구나.
호주의 수정궁을 누가 옮겨 왔는가.
은하수를 뛰어 건너 광한전에 올라 있는 듯.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그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 백반주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중략)
소동파의 적벽부에는 가을 칠월이 좋다 하였으되,
팔월 보름밤을 모두 어찌 칭찬하는가.
잔 구름이 흩어지고 물결도 잔잔한 때에,
하늘에 돋은 달이 소나무 위에 걸렸으니,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태백의 일이 요란쿠나.
여름이 지나가고 계절은 가을인데 성산의 가을 달밤이 너무나 좋다.
공산에 쌓인 낙엽을 북풍이 걷으며 불어,
떼구름을 거느리고 눈까지 몰아 오니,
온갖 나무들을 잘도 꾸며 내었구나.
앞 여울물 가리워 얼고 외나무 다리 걸려 있는데,
막대를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늙은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소문내지 마오.
경요굴 은밀한 세계를 찾을 이가 있을까 두렵도다.
여기서 송강은 겨울 눈 내린 성산의 경치와 이곳에 은거하는 늙은이를 읊고 있다.
산중에 벗이 없어 서책을 쌓아 두고
만고의 인물들을 거슬러 헤아리니
성현은 물론이요 호걸도 많고 많다.
하늘이 만드실 때 곧 무심할까마는
어찌 한 시운(時運)이 일고 기울고 하였는고.
(중략)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는가.
잡거니 밀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의 맺힌 시름 적으나마 풀려진다.
거문고 줄에 얹어 풍입송(風入松)켜는구나.
손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 버려무나.
창공의 떴는 학이 이 고을의 신선이라
휘영청 달빛 아래 행여 아니 만나잔가.
손님이여, 주인에게 이르기를 그대긴가 하노라.
결사(結詞)에선 산중에 벗이 없어 독서를 통하여 고금의 성현들을 만나고 , 뜬구름 같은 세상에 술 마시고 거문고나 타는 진선(眞仙)같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길손인 송강 자신은 신선이 아님을, 이곳에서 언제인가는 떠날 객임을 비치고 있다.
성산별곡에 대한 해설을 하나 하나 하려면 몇 십 페이지는 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 정리하기로 한다.
첫째, 이 가사에는 식영정 20영이 골고루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서석한운, 창계벽파, 양파종과, 도화경, 방초주, 노자암, 자미탄, 조대쌍송, 환벽영추, 평교목적등 20영이 군데군데 나온다.
둘째, 이 가사에는 중국문학과 사상이 여러 군데에서 들먹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염계를 마주보아 태극을 묻는 듯’ 이란 대목이다. 염계는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돈이(1017-1073)의 호이다. 그는 중국 강서성의 여산 기슭에 있는 염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호를 염계라 하였는데 그는 <태극도설>을 지어 주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태극이란 천지만물 생성의 근본인데 무에 가까운 것이어서 무극이라고도 하며, 거기에서 음양과 수 화 목 금 토 오행이 생겨나고 다시 만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나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고문진보 후집에서 찾았다.
무극이 태극이니라.
태극이 움직여 양을 낳으니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하게 되고
고요하게 되면 음을 낳으니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중략)
양이 변하고 음이 합쳐져서
수 화 목 금 토를 낳으니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순조롭게 퍼짐으로서
사철이 운행하게 되는 것이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인 것이니,
태극은 본시 무극이다.
(중략)
‘하늘을 서게 하는 도는 음과 양이고
땅을 서게 하는 도는 부드러움과 강함이고
사람을 서게 하는 도는 인과 의이다‘고 하였고
(중략)
위대하다! 역(易)이여. 이것이 그 지극함인 것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읽고 나니 우리나라 태극기가 달리 보인다. 만물의 근원인 음양과 오행이 모두 들어 있는 태극기는 동양사상이 모두 들어 있는 국기이다.
한편 나는 전원시인 도연명에 관한 책을 읽다가 ‘산중에 책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 아래 펼친 경치 철철이 나타나니‘란 성산별곡 가사가 아래의 도연명의 시에서 착안한 것임을 알았다.
풀 자라니 온화한 봄철인줄 알겠고
나무 시들어 바람이 찬 겨울임을 아노라
비록 달력 같은 기록은 없어도
사계절 변천으로 1년을 알 수 있노라
그리고 보니 16세기 조선의 문학과 사상에 중국의 문학과 사상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 예로 청문고사(靑門故事)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청문(靑門)은 옛 중국 장안성의 성문 이름이다. 진나라 소평이라는 사람이 벼슬을 하다가 진나라가 망하자 청문 밖에서 오이를 심어 가난한 선비생활을 하였는데, 그 오이가 너무 맛있어 세상에 유명하여졌다 한다.
셋째는 <성산별곡> 에는 송강과 서하당의 삶과 교제의 단편이 군데군데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교제에는 서책과 술 그리고 거문고가 있고 길손과 주인은 술을 실컷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조 탄다. 좌서우금(左書右琴)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서하당 김성원은 적막산중에서 신선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송강 정철은 여전히 길손이지 신선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한편 성산별곡이 만들어진 해가 송강의 나이 25세, 40대, 50대 설이 있으나 가사의 내용들로 보아 40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고, 이 가사는 이른바 '성산의 사선(四仙)'으로 일컬어졌던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정철이 차례로 제작한 한시 <식영정 이십 영>을 근간으로 하였다 하며 송강은 스승 송순이 지은 가사 <면앙정가>를 상당히 패러디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강 정철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영정 4 (0) | 2007.01.10 |
---|---|
소쇄원 1 (0) | 2007.01.10 |
송강과 진옥의 애정 (0) | 2006.12.25 |
송강문학기행 7- 식영정 (0) | 2006.12.21 |
담양군 홈페이지에 송강문학기행 (0) | 2006.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