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와 김일손 : 6회 – 연산군, 소릉에 대하여 친국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98년 7월 12일에 연산군은 소릉(昭陵)에 대하여 친국하였다.
연산군 : "전번에 상소하여 소릉을 복구하자고 청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소릉(昭陵)은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1) 권씨의 능이다. 현덕왕후는 1441년 7월 23일에 단종을 낳은 후 하루 만에 산후통으로 별세했다. 나이 23세였다. 왕실은 9월 21일에 그녀를 안산읍 와리산에 장사지냈는데, 문종은 1450년 7월 1일에 현덕왕후로 추숭하고 능호를 소릉(昭陵)이라 하였다. (문종실록 1450년 7월 1일)
그런데 1457년 6월 21일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당했다. 5일 후인 6월 26일에 세조는 현덕왕후 권씨를 폐위하여 서인으로 삼고 소릉(昭陵)을 폐하였다.
1495년 (연산군 1년) 5월 28일에 충청도 도사 김일손은 ‘시국에 관한 시폐(時弊) 26개조’를 상소하면서 26번째 조목으로 소릉 복위를 주청하였다. 그런데 소릉 복위를 맨 처음 주청한 이는 추강 남효온(1454∽1492)이다. 1478년 4월 1일에 하늘에서 흙비[土雨]가 내리자 성종은 구언(求言)하였다. 이러자 4월 15일에 성균관 유생 남효온이 소릉 복위를 주청했다. 그는 소릉 폐치로 천심도 불순하여 재앙이 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15일) 하지만 이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남효온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한편 1495년 12월 30일에 사간원 헌납 김일손은 대사간 김극유, 사간 이의무, 정언 한훈·이주와 연명으로 소릉의 복위를 헌의(獻議)하였다. (연산군일기 1495년 12월 30일)
연산군의 친국에 대해 김일손은 답변했다.
“신이 성종 조에 급제 후 관직에 나갔으니, 소릉에 무슨 정이 있으리까. 다만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보오니, 조종(祖宗)께서 왕씨(王氏)를 끊지 아니하고, 또 숭의전(崇義殿)을 지어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으며, 정몽주의 자손까지 또한 그 수령(首領)을 보전하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조정의 미덕으로서 당연히 만세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김일손은 숭의전 제사와 정몽주 후손 예우 전례에 따라 소릉 복위를 주청하였다고 진술했다. 문종은 고려 왕씨의 후손을 예우하고 숭의전을 지어 제사를 받들게 했다. 『국조보감』 ‘제8권, 문종조 1년(신미년, 1451)’에 나온다.
또한 태종은 정몽주를 개성 선죽교에서 죽였으나, 정몽주를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증직하였고 (태종실록 1401년 11월 7일), 문종은 정몽주의 증손 정윤정에게 관직을 제수(除授)했다.(문종실록 1450년 12월 8일) 성종도 1470년 3월 19일에 정몽주의 자손을 녹용(錄用)하라고 하였다.
김일손은 이렇게 답변을 마무리한다.
“임금의 덕은 인정(仁政)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소릉(昭陵)을 복구하기를 청한 것은, 군상(君上)으로 하여금 어진 정사를 행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연산군은 또 친국했다.
연산군 : "네가 또 악가(樂歌)에 대한 일을 썼는데, 어느 곳에서 들었느냐?"
김일손 : "비록 동요(童謠)라 할지라도 옛사람이 또한 모두 썼으므로, 신도 또한 이것까지 아울러 실었습니다. 후전곡(後殿曲)은 슬프고 촉박한 소리온데,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여 동네 아이들이나 부녀자라도 또한 모두 노래하였습니다.”
김일손은 비록 동요라 할지라도 옛 사람이 모두 썼으므로 그도 썼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요(薯童謠)이리라.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경주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다.
이어서 김일손은 후전곡(後殿曲)은 슬프고 촉박하여 동네 아이들이나 부녀자라도 모두 노래하였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후전곡이 어떤 사연의 노래인지는 『실록』에는 설명이 없다.
후전(後殿)의 뜻이 ‘전각(임금이 거처하는 곳)에서 물러 나온’이란 의미이듯이, 아마도 왕위를 세조에서 물려주고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긴 단종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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