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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45)- 한명회, 1504년에 부관참시 당하다.

순례자의 노래 (45)

- 한명회, 1504년에 부관참시 당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8174일에 사헌부 지평 김영정과 사간원 정언 윤석보가 한명회의 죄를 청하였으나 성종은 직첩(職牒)을 거두었으니 족하다고 전교했다.

 

715일에 임금이 경회루에서 중국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두 중국 사신이 "요즈음 한명회가 보이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성종은 한명회는 죄가 있어서 파직되었다고 답했다.

 

이어서 두 사신이 "한명회는 훈구대신이니 용서해주라고 하자, 성종은

"한명회의 죄는 무례(無禮)에 관계되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압구정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한명회는 평판 관리에 나섰다. 그는 사재(私財)를 털어 성균관에 서적을 기증하는 등 유생들의 환심을 샀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허울 좋은 명예와 화려한 추억뿐이었다.

 

백구야 휠훨 날지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 임금)이 날 버리시니

너를 좇아 여기 왔노라.

 

1487(성종 18) 1114일에 한명회는 73세로 숨을 거두었다.

한명회의 졸기를 읽어보자.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가 졸()하였다. 철조(輟朝)하고, 조제(弔祭)하며, 예장(禮葬)하기를 예()와 같이 하였다. (...)

1484(성종 15) 봄에 나이가 많은 것을 이유로 물러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아니하고, 궤장(几杖)을 내려 주었다. 이 때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는데, 임금이 내의(內醫)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고, 병이 위독하여지자 승지를 보내어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처음에는 부지런하고 나중에는 게으른 것이 사람의 상정(常情)이니, 원컨대 나중에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 라고 말했다. 말을 마치자 한명회는 운명하였다. 나이 73세였다.

 

(...) 사신(史臣)이 논평하였다.

 

한명회는 젊어서 유학을 업()으로 삼아 학문을 이루지 못하고, 충순위(忠順衛)에 속하여서, 뜻을 얻지 못하고 불우(不遇)하게 지내다가, 권람과 친교를 맺고, 권람을 통하여 세조(당시는 수양대군)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만나, 대책(大策 수양대군의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일)을 찬성하여 그 공()이 가장 컸으며, 10년 사이에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고, 마음속에 항상 국무(國務)를 잊지 아니하고, 품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아뢰어 건설한 것 또한 많았다.

 

그러므로 권세가 매우 성하여, 추부(趨附)하는 자가 많았고, 빈객(賓客)이 문()에 가득하였으나 응접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여, 일시(一時)의 재상들이 그 문()에서 많이 나왔으며, 조정관료로서 채찍을 잡는 자까지 있기에 이르렀다.

 

성격이 번잡(煩雜)한 것을 좋아하고 과대(夸大)하기를 기뻐하며, 재물을 탐하고 색()을 즐겨서, 토지와 노비, 보화 등의 뇌물이 잇달았고, 집을 널리 점유하고 첩()을 많이 두어, 그 부호(富豪)함이 일시(一時)에 떨쳤다.

 

여러 번 사신으로 명나라 서울에 갔었는데, 늙은 환관 정동(鄭同)에게 아부하여 많이 가지고 간 뇌물로써 사사로이 황제에게 바쳤으나, 부사(副使)가 감히 말리지 못하였다. 만년(晩年)에 권세가 이미 떠나자, 빈객(賓客)이 없으니, 초연(愀然)히 적막한 탄식을 하곤 하였다.”

(성종실록 14871114)

 

이처럼 한명회는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저승에선 편히 쉬지 못했다.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났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가 1482816일에 사약을 먹고 죽은 것에 대한 피바람이었다. 1504320일에 연산군은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와 귀인 정씨를 궁중 뜰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었다. 이어서 윤씨 폐위와 사사(賜死)에 찬성하였던 윤필상 ·이극균· 이세좌 등을 처형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정창손·심회·이파 등을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511일에 의금부는 청주에 가서 한명회의 관을 가르고 머리를 베어 왔다. 연산군은 죄명을 써서 한양 저잣거리에 매달았다.

 

1506(연산군 12) 중종반정으로 한명회는 신원되었지만, 한명회는 이미 임금을 능멸하고 권력을 남용한 권신, 사육신을 해친 간신으로 역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