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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46)- 김시습, 1483년 봄에 춘천으로 돌아가다.

순례자의 노래 (46)

- 김시습, 1483년 봄에 춘천으로 돌아가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81년에 수락산에 머문 김시습(14351493)은 환속하여 안씨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는 안씨와 사별(死別)하였다. 김시습은 나이 오십에 자식 하나 없는 것을 자탄(自歎)했다. 그의 시 자탄을 읽어보자.

 

나이 쉰이 되었어도 자식 하나 없으니

남은 나의 목숨이 참으로 가여워라

잘 되고 못 됨을 점쳐서 어쩔건가

사람도 하늘도 원망하지 않으리라.

 

고운 해가 창호지에 밝게 비치니

깨끗한 티끝이 자리에 날리네

남은 이 세상에 더 바랄 것도 없으니

먹고 사는 것이야 편할 대로 맡기리라.

 

그런데 1482816일에 폐서인이 된 연산군의 생모 윤씨(14551482)가 사저(私邸)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폐비 윤씨는 죽으면서 피를 토한 삼베 손수건(錦衫)을 연산군이 왕이 되면 전해달라고 친정 어머니에게 유언했다. 정국은 어지러웠다. 김시습은 서울 근처에서 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다시 관동으로 떠나기로 했다.

 

1483319일에 남효온은 관동으로 돌아가는 김시습을 전송했다.

추강집 제1권에 수록된 남효온의 오언고시(五言古詩)를 읽어보자.

 

계묘년(1483, 성종14) 319일에 관동으로 돌아가는 동봉(東峰) 열경(悅卿)을 전송하다. 열경은 육경(六經)과 자사(子史)를 싣고서 관동의 산수를 둘러본 뒤에 기장 심을 땅을 구하여 농사지으며 살 작정이고 다시 고향에 돌아올 뜻이 없다. 내가 박주(薄酒)를 가지고 가서 손잡고 탄식하며 천리 밖의 서로 만날 기약 없는 이별로 삼는다.

 

허유가 기산에 들어간 뒤로 許由入箕山

맑은 이름이 세상과 막혔으니 淸名與世隔

요 임금 덕이 얇아서가 아니고 非薄帝堯德

산수를 몹시 즐겼기 때문이라 偏成山水癖

 

허유(許由)BC 2300년에 살았던 중국 고대 전설 속의 은자로 부귀와 권력을 뜬구름처럼 여겼다. 요임금이 만년에 자신의 자리를 허유에게 양보하려 하자 그는 한사코 거절하며 기산(箕山, 허난성 태강 북쪽) 아래로 도망쳐 몸소 밭을 갈며 살았다. 이후 요 임금이 다시 그를 불러 벼슬을 주려하자, 허유는 어지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穎水 허난성 동부)로 가서 자신의 귀를 씻었다.

 

하물며 밝고 성스러운 시대엔 況當聖明時

미치광이를 좋아하지 않음에랴 不喜風漢客

진퇴에는 정해진 운명 있으니 行藏有定命

득실에 대해 무엇을 근심하랴 得失何戚戚

 

서울 거리에 바람이 종일 불어 終風十二街

온통 여우와 토끼 자취뿐이라 莫非狐兎跡

인간 세상은 사는 맛이 물리고 人寰世味飫

관동 지방은 산수가 후미지네 關東山水僻

 

높은 산에는 큰 소나무 빼어나고 山峻秀長松

얕은 시냇물에 작은 돌 부딪치리 水淺擊小石

천추에 아름다운 이름 빛날 것이고 千秋令名昭

사적은 구름과 물처럼 깨끗하리라 事與雲水白

 

 

내가 와서 박주를 마련하여 我來資薄酒

등불 아래 얘기하며 밤을 보내네 談話供燈夕

할 말이 많아 헤어질 수 없으니 刺刺不能別

가슴속 회포를 무엇으로 풀리오 有懷何由釋

 

또 남효온은 동대문 밖에서 전송하면서 석별의 정을 시로 적었다.

 

춘천의 옛 은거지로 돌아가는 동봉 선생을 동교(東郊)에서 송별하며

 

1

 

선생을 송별하려고 병든 몸 일으켜서 爲送吾君起病身

흥인문(동대문) 밖에서 더운 먼지 덮어쓴다오 興仁門外觸炎塵

하늘 끝의 이별은 오늘 저녁부터이니 天涯離別自今夕

메밀꽃 앞에서 눈물 참는 사람이라오 蕎麥花前忍淚人

 

2

 

동교(東郊)에서 술잔 들어 서남자를 전별하니 東郊餞飮徐男子

세상사 나눌 모용 같은 이 다시 없으리 不與茅容說世間

우리의 도는 애닯게도 설 땅이 없지만 吾道傷心立無地

선생은 편히 배 두드리니 백년이 한가하리. 先生坦腹百年閒

 

남효온은 김시습을 전별하는 자리에서 세간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남효온은 김시습을 모용 같은 인물이라고 하였다. 모용(茅容)은 후한 사람으로 나이 40이 될 때까지 농사를 지었고, 행실이 단정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나중에 큰 학자가 되었다.

 

 

 

김시습도 전별시를 지어 남효온에게 주었다.

 

옛사람도 지금 사람과 비슷하고

지금 사람도 뒷날 사람과 같으리

인간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

유유히 흘러 가을 가고 봄이 오네

 

오늘은 소나무 아래서 술 나누지만

내일 아침엔 깊은 산으로 향하려오.

깊은 산 푸른 봉우리 속에서

그대를 그리는 정 실타래 같으리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베개, 2021, p 483-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