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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세계여행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1) 에르미타시 박물관(15)-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1) 에르미타시 박물관(15)-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승인 2019-12-16 09: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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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렘브란트 방에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림은 알렉산드르 1세가 1814년에 구입한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의 컬렉션인데 렘브란트가 1634년에 그렸다.

이 그림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비추고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오른편에 있는 성모 마리아는 실신 상태로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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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34년). 사진=김세곤 제공

한편 렘브란트는 1632년에 네델란드 총독 오라네 공 프레데릭 헨드릭 으로부터 헤이그 궁 개인 예배당에 걸릴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오라네 공은 프랑드르 미술 특히 루벤스에게 심취하였는데 렘브란트는 1633년에 안트베르펜 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1612년 작)을 참조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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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33년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사진=김세곤 제공


따라서 미술평론가 화이트는 이 그림을 ‘렘브란트가 루벤스에게 보내는 경의(敬意)’라고 비평했다. (화이트 저,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 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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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안트베르펜 성당에 걸린 루벤스의 세 폭 제단화. 사진=김세곤 제공


하지만 렘브란트 그림은 루벤스의 그림과 사뭇 다르다. 루벤스가 그린 예수 그리스도는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 인체 비례에 맞는 근육질인데 반하여 렘브란트는 축 늘어져 있다. 또한 루벤스의 성모마리아는 의연하게 그리스도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 반면에 렘브란트의 성모마리아는 아예 실신하여 땅에 누운 상태이다.

한편 오라네 공은 렘브란트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에 흡족하여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를 추가로 주문했다. 이에 렘브란트는 1636년에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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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1636년 작,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사진=김세곤 제공

이후 렘브란트는 1646년까지 오라네 공을 위해 그리스도 수난 관련 연작 5점을 더 그렸다. '그리스도 승천(1636년)' '그리스도의 매장(1639년)' '그리스도의 부활(1639년)' '목동들의 찬양' '예수 할례제(인멸되었으나 사본이 남아 있음)'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레이던 시절부터 친한 오라네 공의 비서 콘스탄테인 하위헌스의 도움과 중재가 컸다. 렘브란트가 하위헌스에게 보낸 일곱 통의 편지가 이를 말해준다.

그리스도 수난 연작 그림들은 뒤셀도르프의 팔라틴 선제후에게 흘러들어갔다가 나중에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 안착했다.

이윽고 ‘돌아온 탕자’ 그림 앞으로 가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천사와 늙은이와 알몸의 청년이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렘브란트가 1635년에 그린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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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635년 작품). 사진=김세곤 제공


그림은 구약성서 창세기 22장에 충실하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이 100살, 부인 사라가 91세에 낳은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위에 올려놓고 칼로 이사악을 막 내려치려는 찰나에 야훼의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소리쳤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도다.”(창세기 22장 9-13절) 그렇다. 아브라함은 행동하는 믿음이었다.(야고보서 2장)

그림에는 이사악을 베려던 휘어진 단도가 떨어지며 공중에 멈추고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직도 왼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고, 빛은 이사악의 알몸에 집중되어 있다. 역시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답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거장 카라바조를 닮았다. 또한 스승인 종교화가 라스트만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주문 제작인지 아니면 고객이 화가의 공방을 구경하다가 사들였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신교의 나라 벨기에는 칼뱅주의 교리로 인하여 종교화가 그리 성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생애에 걸쳐 종교화를 여러 장 그렸고, 별세 직전인 1668-1669년에 그린 '돌아온 탕자'는 불후의 명화였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