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 평가

 

  고산 윤선도에 관한 단편 글을 쓴  작가들은  상당수 있다. 특히 국문학자들이 그렇다.

 

  최근에 읽은  책 < 조선후기 문화의 중흥과 사회의 변동 , 문예마당,  2004년  김종성 지음> 책에는

 

  윤선도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하고 있다.

 

 

 "  정치적으로는 불우했으나 문학적으로 뛰어나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시가인으로 불리는 윤선도는 

 

 자연을 문학의 제재로 채택한 시조작가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역량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윤선도의 작품은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힌 삶을 찬양하는 강호가도를 잇는다고 표방하면서도

 

 자연을 제재로 하되 그것을 사회의 공통적 언어관습과 결부시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개성적 판단에 의한

 

 어떤 관념을 표상하기 위하여 그것을 임의로 선택해 우리의 국어로 나타내기에 힘썼다. 그의 작품은 옛사람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창의성과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의 고산 생가터

 고산이  8세 때 양자로 간  명동 성당 앞  고산 집터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미음나루( 풍속마믈)에 있는  고산  시비  -이곳이 그의 호  고산이 나온  고산촌이다. 

   

'고산 윤선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증반금  (0) 2008.03.16
고산 윤선도의 호 고산은 지명이다.  (0) 2008.03.16
공재 윤두서  (0) 2008.03.13
명동성당과 윤선도 집터  (0) 2008.03.13
윤선도와 정약용  (1) 2008.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