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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깊이 보기 ⑥조선공산당 주도로 수립된 '조선인민 공화국'(1)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깊이 보기 ⑥조선공산당 주도로 수립된 '조선인민 공화국'(1)

 

김세곤 칼럼리스트 | segon53 @hanmail.net | 2025.02.18 12:54:01

[프라임경제] 1945년 8월30일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가 일본에 첫발을 디뎠다. 9월2일 맥아더 총사령관은 요코하마 해상의 미주리 함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9월5일 오후 1시 미 제24군단장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42척의 대 선단이 오키나와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했다.  

미군의 남한 진주가 임박하자 건준을 장악한 조선공산당 박헌영은 여운형의 동의를 얻어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을 해체시키고 '조선인민공화국 (朝鮮人民共和國, 약칭 '인공')'을 수립했다.  

건준은 9월6일 오후 9시 경기고녀(경기여고의 전신) 강당에서 전국대표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인민대표회의를 개최했다. 

먼저 여운형이 등단해 개회사를 했다. 여운형은 비상한 시기에 연합국의 진주에 대비해 '연합국과 절충할 인민대중의 집결체'로서 '인공'이 수립됐음을 강조했다. 

또한 "혁명가는 정부를 조직하고 인민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인민이 승인만 한다면 조선인민공화국과 그 정부는 그대로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김무용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국가건설 운동' 박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2005 :출처, 위키백과, 조선인민공화국)

이어서 건준 부위원장 허헌이 경과 보고를 한 후에 '조선인민공화국' 조직기본법 초안을 축조 낭독해 다소의 수정을 가해 통과시킨 후, 다음과 같은 정강과 시정방침을 발표했다.

1.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적 잔재 세력을 일소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기한다.

2. 일본제국주의의 법률·제도를 즉각 철폐한다.

3.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 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한다.

4.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 반역자들의 공장·광산·철도·항만·선박·통신 그밖의 모든 시설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

5.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6.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만 14세 이하의 유년노동을 금지하며,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한다.

7. 국제평화 유지를 위한 우방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중요시한다. (정일준, '해방직후 분단국가 형성에 관한 일고찰', 해방 직후의 민족문제의 형성과 사회운동, 창작과 비평사, 1990, p 128)

이윽고 인공은 인민 위원 선거에 들어가 55명의 중앙인민 위원, 후보 위원 30명, 고문 12명을 발표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중앙인민위원 (55명)

이승만, 여운형, 허헌, 김규식, 이관술, 김구, 김성수, 김원봉,  이요설, 홍남표, 김병로, 신익희, 안재홍, 이주상, 조만식, 김기전, 최용달, 

이강국, 김용암, 강진, 이주하, 하필원, 김계림, 박낙종, 김태준, 이만규, 이여성, 김일성, 정백, 김형선, 이정윤, 김점권, 한명찬, 유축운, 이승엽, 강기덕, 조두원, 이기석, 김철수, 김상혁, 정태식, 정종근, 조동호, 서중석, 박문규, 박광희, 김세용, 강병도, 이순근, 무정, 장기욱, 정진태, 이순금, 이상훈

후보위원 (20명)

최창익, 황태성, 홍덕유, 이청원, 최근우, 김준연, 한빈, 양명, 최원택, 안기성, 정재달, 김오성, 권오직, 김두수, 장순명, 이광, 최성환, 이림수, 현준혁, 김덕영

고문 (12명)

오세창, 권동진, 김창숙, 정운영, 이시영, 홍명희, 김항규, 김상은, 장도빈, 김용기, 김관식, 이영

여기에서 중앙 인민위원 55명의 성향을 보면 42명이 좌익이거나 공산주의와 관련 있는 자였고, 민족주의자나 우익은 13명에 불과했다. 

특이한 것은 정작 인공 수립을 주도한 박헌영은 인민위원 명단에 빠진 점이다. 아마도 배후에서 인공을 조종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에 미국에 있던 이승만, 중국에 있던 김구, 소련에 있던 김일성이 중앙 인민위원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 저자

9월7일 건준은 '발전적 해소'라는 미명 아래 해체됐다. 이때 인공이 급조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군정 실시에 직면한 여운형과 박헌영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해방정국에서의 주도권 장악이 목적이었다.  

특히 좌파 세력은 형식적이라도 국내 각계 각층의 사회세력들이 참여하는 정치 세력들을 만들어 미군정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주도권을 장악하여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둘째, 중경의 임시정부와 맞설 수 있는 정치조직을 만들 필요성 때문이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중경의 임시정부보다 우월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좌·우익, 국내·외를 망라한 명망가를 다수 포함시켰다. 

(참고문헌)
o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인물과 사상사, 2004,p 59-61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2, 탐구당, 2003
o 이완범 저, 한국해방 3년사, 태학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