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역사칼럼]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69)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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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13 12:38
- 수정 2024.11.1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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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합작 추진(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46년 3월 20일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는 시작부터 미소 양국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갈등을 겪다가 5월 6일부터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5월 7일에 일제시대에 저명한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이 박헌영과 공산당을 신랄하게 비난한 개인 서신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5월 9일에는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공산당을 비난하고 1945년 11월 12일에 여운형이 창당한 조선인민당을 탈당했다.
이후 미국은 좌우 합작을 추진하였다. 미군정은 중도파인 김규식(1881~1950)과 여운형(1886-1947)을 포섭하여 좌우합작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미군정이 좌우합작에 열성을 보인 이유는 만약 미군정이 중도파를 제외하고 이승만과 김구의 우파를 지지하면 중도파가 공산주의 세력과 합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은 좌우합작 추진을 위하여 정치고문인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
버치는 계급이 중위였지만 철학박사이자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오하이오 주 변호사로 활동하였는데, 1945년 12월 15일에 한국에 배치되어 주로 한국의 정치인들을 담당하는 미군정 정치고문단 소속으로 활동했고, 1948년 5월 총선거 직후에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버치 문서’를 남겼다.
애초에 김규식은 강한 좌익혐오증을 갖고 있어서 좌우합작에 부정적이었다. 김규식은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하였던 강원용(1917-2006)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가 공산당이 뭔지 몰라서 그래. 내가 알기로는 공산주의는 천하에 몹쓸 것이야. 특히 한국에서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면 안 돼. 내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러시아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봤는데, 원래 그들이 참 선량한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레닌이 공산혁명을 일으킨 후에 그들이 아주 잔인해져서 700만 명이나 숙청을 당하지 않았나? 알바니아에서 공산혁명이 났을 때도 하룻밤에 6만 명을 죽인 일이 있었으니 공산주의란 것이 그렇게 잔인하고 가혹한 것이거든. 그런데 우리 민족이 내 생각에는 상당히 잔인한 민족인데 게다가 공산화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강준만 저, 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1권, 인물과사상사, 2004, p 248-249)
이처럼 김규식은 공산당을 혐오하였기에, 그를 좌우합작에 끌어들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버치가 표면에 나선 미군정의 노력은 집요했다. 심지어 이승만(1875-1965)까지 동원하여 김규식 설득에 나섰다.
미군정의 요청을 받은 이승만은 김규식을 찾아가 50만원 쯤의 돈을 내놓으며 김규식이 좌우합작에 나서줄 것을 설득했다.
“이것은 내 개인 생각이 아니고 미국의 정책이 이렇게라도 해야 통일임정 수립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아우님이 한번 나와주시오.”
대단한 애연가였던 김규식은 대통(기다란 대나무 담뱃대) 담배를 탁탁 털면서 말했다.
“형님(이승만을 말함)은 대통령 못하면 못 살 사람이고, 나는 대통담배를 못피우면 못 살 사람이니 나를 대통이나 피우게 내버려 드시오.”
결국 김규식은 승낙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나무에 올라선 다음에는 형님이 나무를 흔들어서 나를 떨어뜨릴 것도 압니다. 또 떨어진 다음에는 나를 짓밟을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나는 독립정부를 세우기 위해서 나의 존재와 경력의 모든 것을 희생하겠소. 내가 희생한 다음에 그 위에 형님이 올라서시오.”
실제로 이승만은 5월 25일에 신당동 버치의 집에서 열린 좌우 합작운동 첫 회합 후 열흘도 안 된 6월 3일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다.(강준만, 위 책, p 2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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