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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김세곤의 반(反) 부패 칼럼] 목민심서 톺아보기 (1) - 목민심서 자서

[김세곤의 반() 부패 칼럼] 목민심서 톺아보기 (1) - 목민심서 자서

기자명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등록 청렴강사

입력 2023.10.30 04:00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 원등록 청렴강사.

 

다산 정약용이 1818년에 지은 목민심서는 지방관의 직무와 몸가짐에 대한 책인데 모두 12부이다. 1부 부임, 2부 율기, 3부 봉공, 4부 애민, 5부에서 10부는 6, 즉 이·····공전이며, 11부는 진황, 12부는 해관이다.

 

그러면 몇 회에 걸쳐 목민심서를 자세히 살펴본다.

먼저 다산이 1821년 늦봄에 남양주 생가에서 지은 목민심서(牧民心書)자서(自序)’이다.

 

옛날에 순임금은 요임금의 뒤를 이으면서 12목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기르게 하였고, 문왕이 정치제도를 세울 사목(司牧)을 두어 목부(牧夫)라 하였으며, 맹자는 평륙에 갔을 때 추목(芻牧 ;가축 사육)을 백성을 기르는데 비유하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백성을 부양하는 일을 가리켜 목()이라 한 것은 성현의 남긴 뜻이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司徒)는 만 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修身)케 하고, 태학(太學)에서는 왕족 및 공경대부의 자제들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백성을 다스리게 했으니,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목민(牧民)의 일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고 ,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성인의 시대는 너무 멀어서 그 말씀이 희미해져서 그 도()또한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
나의 선친(부친)께서 조정의 후한 대우를 받아 두 현의 현감, 한 군의 군수, 한 부의 도호부사(都護府使), 한 주의 목사(牧使 진주목사를 하였다.)를 지냈는데, 모두 잘 다스린 공적이 있었다. 소자는 비록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좇아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보아서 다소간 깨달은 바도 있었으며, 물러나 이를 시험해 봄으로써 다소간 체득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귀양살이하는 몸이 되어 쓰일 데가 없게 되었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한 18년 동안에 사서와 오경을 반복해서 연구하여 수기(修己)의 학()을 익혔으나, 생각해보니 수기의 학은 학문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중국의 23()와 우리나라의 역사서와 기타 저술및 문집 등의 여러 서적에서 옛날의 사목(司牧)이 백성을 기른 자취를 골라 위 아래로 정리. 분류. 수합하여 차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남쪽 변두리 땅에서는 전세(田稅)와 공부(貢賦)를 아전들이 농간하여 여러가지 폐단이 어지럽게 생겨났는데, 나의 처지가 낮았기 때문에 듣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이것들 또한 종류별로 기록하였으며, 나의 얕은 견해를 덧붙였다.

모두 12부인데 1부는 부임, 2부는 율기, 3부는 봉공,4부는 애민이며,5부에서 10부까지는 육전(六典 ,,,,,)에 관한 사항이고, 11부는 진황,12부는 해관이다.12부가 각 6조로 구성되었으니 모두 72조이다. (...) 고려말에 비로소 오사(五事), 즉 수령의 직무를 다섯가지 방면으로 분류해 수령들을 고과하였고, 조선에서도 그대로 하다가 나중에 7(七事)로 늘렸다. 오사나 칠사 모두 대체의 방향만을 독려한 것일 따름이었다. 수령이라는 직분은 관장하지 않는 바가없으니, 여러 조목을 차례로 드러내더라도 오히려 직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스스로 생각해서 행하기를 바랄 것인가? 이 책은 첫머리와 맨 끝의 2부를 제외한 나머지 10부에 들어있는 것만 해도 60조나 되니,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서 자기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앞 사람의 말씀이나 지나간 행적들을 많이 익혀서 자기의 덕을 쌓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내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어찌 꼭 목민에만 한정한 것이겠는가?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목민(牧民)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이처럼 정약용은 자서말미에 책 이름을 목민심서라 한 까닭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