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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22.02.0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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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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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초에 시작된 러일전쟁은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이기고 있었다. 2월 23일에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8월 22일에는 ‘한일 협정서’를 체결했다. ‘고문(顧問)정치’의 시작이었다.
8월 28일에 철도원 총재 신기선이 의정부 참정(총리)에 임명됐다. 그런데 그는 9월 2일에 사직서를 냈다.
“예로부터 나라가 망하고 어지러워진 일들이 삼가 역사책들에 많이 씌어 있으나 오늘날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망국의 증후와 기이한 재앙 같은 것은 천지가 열린 이래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야 남이 업신여기고,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망하게 한 다음에야 남이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사를 닦고 스스로 백성을 보전했는데 남의 침입을 받는 일은 고금 천하에 없습니다.… 현재 온몸과 터럭들까지 다 병들어 단 한 점의 살점도 성한 것이 없이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온갖 법이 문란해지고 모든 정사가 그르쳐졌습니다.… 증세에 대한 처방은 두 가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첫째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하는 것이고, 둘째 뇌물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온 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으로서 심오한 논의가 아니며 시행하기 쉬운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엇을 꺼려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하는 것입니다. 깊은 대궐에서는 상하의 엄격한 구분이 있고, 친척을 뵙는 것도 정해진 시간이 있으며, 내시들의 시중듬에도 제한이 있고, 만나는 사람은 오직 공경이나 어진 사대부들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찮고 간사한 무리들이 폐하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는가 하면 점쟁이나 허튼 술법을 하는 무리들이 대궐 안에 가득합니다.
대신은 폐하를 뵐 길이 없고 하찮은 관리만 늘 폐하를 뵙게 됩니다. 정사를 보는 자리는 체모나 엄할 뿐 서리나 하인들이 직접 폐하의 분부를 듣습니다. 시골의 무뢰배들이 대궐의 섬돌에 꼬리를 물고 드나들며 항간의 무당 할미 따위들이 대궐에 마구 들어갑니다. 평소에 감히 보통 관리도 가까이하지 못하던 자들이 폐하의 앞을 난잡하게 마구 질러다닙니다. 이로 인해 벼슬을 함부로 주고 청탁이 공공연히 벌어집니다. 굿판이 대궐에서 벌어지고 장수하기를 빌러 명산(名山)으로 가는 무리들이 길을 덮었습니다.… 둘째, 뇌물을 없애는 것입니다.… 지금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는 것을 일상적인 일처럼 보며,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뇌물이 아니면 벼슬을 얻을 수 없고, 뇌물이 아니면 송사(訟事)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알며, 관찰사나 수령 자리는 높은 값이 매겨져 있고 의관(議官)이나 주사(主事) 자리도 또한 값이 정해져 있어서 심지어는 뇌물을 바치고 어사가 되어 각 도를 시찰하기도 합니다.… 폐하께서는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뇌물을 근절하소서.”
이에 고종이 답했다.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있으니 잘 참작해야 할 것이다. 사직하지 말고 즉시 일하라.”
11월 25일에 신기선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고종은 반려했다.
12월 31일에 신기선은 또 다시 사직 상소했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 임술년(1862), 갑오년(1894) 전보다 더 심해졌으니 이는 변고입니다. 이 변고는 백여년 동안 차근차근 쌓인 것이 폐하 때에 터졌으니 통탄스럽습니다.… 아첨이 풍속이 되고 바른말로 간언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이 정상이 됐습니다.”
마침내 고종은 신기선을 교체했다. 임명된 지 4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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