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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망했나 부패망국

헤이그 특사 사건 (28)- 이위종 특사의 연설 :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특사 사건 (28)

- 이위종 특사의 연설 : 국채보상운동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578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약관 23세의 헤이그 특사 이위종은 일본의 교활함을 비판했다. 요즘 같으면 이대남이다.

 

거의 매주 들려오는 소식은 일본인 기술자들과 관리들이 엄청난 고액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일본인 경찰을 대폭 늘렸다는 이야기뿐입니다.

 

한편 일본은 우리나라를 위하여 교육제도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사실은 우리 국민에게 실용 과학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말을 말살하고 일본말로 대체하였습니다. 따라서 온 나라가 이러한 신교육에 반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우리 청년들이 해외유학을 하려고 해도 그들이 해외에서 반일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출국을 금지시켰습니다.

 

또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행정제도를 개혁한다고 공언하지만, 실은 유능한 우리 관리들을 축출하고 그 자리에 높은 봉급을 받는 무능한 일본인을 채우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 당국은 또 군사 목적을 핑계삼아 우리 정부의 공공건물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개인 사유지까지도 정당한 보상없이 마구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수천 가구의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빼앗기고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농지를 강탈당한 농부들은 산으로 들어가 화적이 되기도 하며 처자식을 데리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맨몸으로 국경을 넘어 만주 땅과 연해주 땅으로 나라를 떠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라를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떠나는 한국인들. 문득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가 생각난다.

 

이위종의 연설은 이어진다.

 

일본은 이른바 통화개혁이라는 정책으로 시장의 혼란만 초래하고 수 만명의 우리 상인이 도산했으며, 우리 경제의 자립 기반마저 파괴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언론이나 정치가들은 그들이 취하는 모든 정책이 한국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대부분의 일본 노동자는 범죄자나 부랑인입니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무도하게 한국인의 재산을 탈취하는 데도 이토 통감은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수수방관하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강제로 떠안은 국채를 일본이 갚기 전에는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 한마음으로 국채보상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고이 간직한 패물과 금붙이를 처분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있으며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과자나 장난감을 사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까지 선뜻 내놓고 있습니다.”

(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김영사, 2019, p161-163 )

 

그랬다. 19072월에 대구 출신 기업인 서상돈이 1906년 말 현재 1,300만원(현재 통화가치 3,900억원 상당)에 달한 대일채무를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했다. 2천만 겨레가 매달 20전 저축하면 3개월 만에 이를 상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러자 대한매일신보등 신문사들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3개월 만에 231만여 원을 모금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남자는 담뱃값을, 여자는 비녀나 가락지를 냈다.

 

1907422일자 대한매일신보대저 2천만 중 여자가 1천만이요, 1천만 중에 가락지 있는 이가 반은 넘을 터이오니, 가락지 매 쌍에 2000원씩만 셈하고 보면 1천만 원이 여인 수중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국채를 갚고 보면 국권만 회복할 뿐 아니라 우리 여자의 힘이 세상에 전파하여 남녀동등권을 찾을 터이니···”라는 국채보상탈환회의 취지서를 싣고 동참을 호소했다.

 

국채보상운동엔 해외 동포들도 적극 참여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교민단체인 공립협회의 기관지 공립신보에 실린 1907426국채보상의연 발기문기사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속담에 말하기를 빚진 종이라 하니 그 말이 과연이로다. 오늘 우리의 국채가 1,300만 원에 달하였는데, 이 국채를 만일 부패한 정부에만 맡겨 두고 우리 국민이 보상할 방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마침내 빚의 종을 면치 못할지라. 이러므로 내지에서 유지 인사들이 국채보상하기를 발기하니 전국 인민이 한층 격앙하여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 같이 다투어 의연금을 모집하니 어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해외에 있는 동포도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당연하기에 본원 등이 이에 발기하오니 미주에 있는 모든 동포는 각각 힘을 다하여 보조하기를 바라옵고 또 수전각주하는 곳은 공립신보사로 정하였사오니 이차 하량하심 천만복망

 

부패한 정부에 맡겨 두지 말고 국민이 나서자!” 미국 샌프라시스코 교민들이 보는 눈에는 고종 정부는 이미 부패 정부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고 러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이위종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