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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망했나 부패망국

헤이그 특사 사건 (29)- 각국 신문 기자들, 이위종 연설을 송고하다.

헤이그 특사 사건 (29)

- 각국 신문 기자들, 이위종 연설을 송고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578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3세의 청년 외교관 이위종은 유창한 프랑스어로 1시간 정도 연설했다. 이제 마무리이다.

 

일본인은 입만 열면 항상 평화, 평화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총구 앞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일본인이 생각하는 평화란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그들을 반대하는 한국인을 모두 죽였을 때에만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의 독립과 자유가 실현되지 않은다면 동양평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아직 잘 조직되어 있지 않으나,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정신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의 잔인하고도 비인도적, 이기적인 침략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에 처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로 뭉쳐 최후의 한 사람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경고합니다. 일본은 저항하는 2천만 한국 국민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는 일이 결코 유쾌하지도, 쉽지도 않는 일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 굳게 약속한 한국의 독립뿐만 아니라 개방(open door)’도 위반하였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은 브라보라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계속 쳤다.

사회자 스테드가 손짓하자 박수가 멈추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위종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각국 신문 기자들은 이위종의 연설문 전문을 자기 나라로 송고하느라 분주했다. 기사의 제목은 한국을 위한 호소 (A Plea for Korea)’ 였다. 1)

 

710일에 <헤이그 신보>는 이위종의 연설을 상세하게 실었다.

 

한편 79일에 츠쯔키 게이로쿠 헤이그 일본대사는 한국황제 밀사의 일본 공격 연설에 관한 사항을 일본 외무성에 긴급 타전했다.

(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김영사, 2019, p163-165)

 

그러면 일본 외무성이 710일에 이토에게 보낸 전보를 읽어보자.

 

문서제목 : 한국 황제 밀사(密使)의 일본 공격 연설에 관한 보고

 

문서번호: 내전(來電) 136

발신일 : 1907710일 오후 720분 동경 발()

발신자 : 외무대신

수신일 :1907710일 오후 1110분 경성착(京城着)

수신자 : 이토 통감(伊藤 統監)

 

츠쓰키(都筑) 대사의 전문 제51

 

어젯밤 스테드가 주재한 반공개 집회에서 상당히 많은 청중이 모인 가운데 이위종(李瑋鍾)이 연설을 하였음.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로 일본의 정책을 맹렬하게 공격했음. 청중 한 사람이 한국인들에게 동정을 표시하고 일본인들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제안하자, 스테드를 포함한 또 다른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비난에는 반대하였음.

 

마침내 채택된 결의안은 한국에 대한 동정이었음. 일본에 대해서는 비난은 하지 말고, 국제사법재판소가 한국 황제가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은 채, 국가 상실과 같은 문제를 계속 조사하고 심리할 수 있기를 희망한 것이었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통감부 문서, 통감부 문서 5, 헤이그 밀사사건)

 

이러자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고, 대한제국은 태풍 전야였다. 고종 황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1) 1907822일에 미국 인디펜던트 잡지는 헤이그 특사 이위종이 190778일 국제클럽에서 한 연설문 전문을 실었다.

 

19071019일에 뉴질랜드 신문 <오아마루 메일(Oamaru Mail)도 이위종의 영문 연설문 전문을 실었다. 뉴질랜드 신문의 연설문 전문은 이승우의 저서 <시베리아의 별>에 실려있다. (이승우의 책, p 34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