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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남이여!

아,호남이여!, 광주일보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광주일보 2013.12.9

아, 호남이여!

                                                김 세 곤  호남역사연구원장

2013년 12월 09일(월) 00:00

“나는 나라로부터 녹봉을 받은 적이 없으니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에 단 한 사람의 선비도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나는 차마 양심을 저버리지 못하여 영영 잠들려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


1910년 9월 한일병합 소식을 들은 구례의 선비 매천 황현은 이런 유서와 함께 절명시 4수를 쓰고 독약을 마셨다.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은 군사 7만 명을 이끌고 서울로 진군하였다. 그런데 선조임금이 서울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그만 전라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이광은 군사를 다시 모아 2차 출정하였으나 전라·충청의 5만 군사는 용인전투에서 1600명의 왜군에게 패배하여 흩어졌다. 이후 그는 전라도에서 꼼짝 안 하고 사태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런 전라도관찰사의 무능에 분노한 장성의 선비 정운룡과 광주의 박종정, 유사경은 의주에 피난중인 선조에게 이광을 갈아치우라고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을 읽은 선조는 이광을 파직시키고 그 대신 광주목사 권율을 전라도관찰사로 임명하였다.


호남의 선비들은 의롭다. 황현은 망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 수치스러워 자결하였고, 정운룡 등은 지방 수령의 무능을 증오하여 관찰사를 탄핵한 것이다.


의(義)를 주창한 이는 중국 전국시대의 맹자(BC 385∼304)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인간은 원래 인의예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이 인(仁)의 단초이고 수치와 증오의 마음(수오지심)이 의(義)의 단초라고 하였다. 수치는 ‘이렇게 사는 내가 부끄럽다’는 뜻이고, 증오는 ‘불의한 자를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의미이다. 이같이 의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한편 ‘맹자’ 책 첫머리를 읽어보면, 양혜왕이 맹자에게 “멀리서 이렇게 오시었으니 장차 내 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겠나이까?”라고 말한다. 그런데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꾸한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서 한 첫 마디가 약육강식의 시대에 전혀 통할 리 없는 인의였으니, 그는 정말 대단한 이상주의자요 정치 사상가이다.


‘맹자’ 책은 민본주의가 핵심이다. 맹자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도 민심이 등을 돌리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하는 혁명론을 설파하였다. 역성혁명을 꿈꾼 정도전이 읽었다는 책이 정몽주로부터 얻은 ‘맹자’였다.


잘 알다시피 호남은 의향(義鄕)이다. 호남 사람의 DNA속에는 의가 들어 있다. 호남 사람들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분기하였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살펴보자. 7도가 왜적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오직 전라도만이 온전하였을 때, 고경명과 김천일, 최경회·고종후와 장 윤·강희열, 임계영과 김덕령, 그리고 김경수·김제민·변사정·박광전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호남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1593년 7월에 이순신 장군이 여수에서 한산도로 수군 진영을 옮긴 후 친구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약무호남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는 그냥 빈말이 아니다.


이런 호남의 의기(義氣)는 병자호란, 동학농민혁명, 한말의병, 광주학생 항일운동과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모두가 의롭게 살고자 하는 호남인들의 외침이요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호남은 위기이다. 호남 배제와 폄하가 확산되고 있고, 정체성(正體性)과 자긍심이 무너지고 있다.


일베 회원이 5·18 광주민주화 운동 희생자 시신을 ‘홍어택배’라고 비하하는 사진과 글을 올리는가 하면, 모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호남하면 부정, 반대, 비판, 과거집착 등 4가지 단어가 떠오른다.”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정체성 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 취직 준비하는 청년들이 본적을 옮기는 일까지 생겼다. 호남사람이면 안 뽑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기죽지 말자.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도 다시 일어난 이들이 바로 호남사람들이다. 또한 위기가 닥치면 더 뭉치게 되어 있다. 궁즉통(窮卽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