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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후손들

김일손의 글 재주

 

 

  어우야담에 있는 글입니다. 

 

 

  장인에게 보낸 편지, 김일손


사위의 편지를 받은 장인은 눈썹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얼마 전 얻은 사위 하나가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던 차에 받은 편지가 아리송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이 무관(武官)출신이나 재상까지 지냈으므로 글은 좀 읽을 줄 알았지만 사위가 보낸 편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편지에는 "문왕(文王)이 죽고 무왕(武王)이 나왔으니 주공주공(周公周公) 소공소공(召公召公)에 태공태공(太公太公)이라." 고 짧은 문구만 적혀 있을 뿐 다른 말이 덧붙여 있지 않았다.

"어허. 이게 무슨 소린가. 평소부터 사위가 십구사략(十九史略:중국의 태고(太古)에서부터 원(元)나라까지의 19사를 요약한 사서)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공"과 "태공"이 각각 반복되어 있을 뿐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장인은 한숨을 쉬며 사위 김일손으로부터 온 편지를 사랑채에 그냥 두고 안채로 향했다.
조금 괴벽이 보이는 사위이긴 했으나 괜한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기에 장인은 더욱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장인은 잠시 아픈 머리를 쉬기 위해 안방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나리마님."
"무슨 일이냐?"
"건넛마을에 사시는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 음. 사랑채에서 기다리시라고 해라. 의관을 정제하고 간다고 여쭈어라."

장인은 대청마루를 나와 천천히 사랑채로 향하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위의 편지내용을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채 문을 여니 손님으로 온 선비의 손에 사위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장인은 사랑채를 나올 때 편지를 접어두지 않고 그대로 펼친 채 방을 떠났던 것을 기억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남에게 온 편지를 이렇게 읽게 돼서 정말 실례했습니다."
"어험... 우리 사위에게서 온 편지라오. 그만 돌려주시오."
장인은 조금 언짢은 기분에 헛기침을 하고는 그 편지를 돌려 받았다.
"그렇습니까? 사위의 재치가 대단하군요. 영명한 아들하나 들이셨소이다."
장인은 손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 편지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저는 솔직히 도통 모르겠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괜한 장난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하하. 저도 방에 들어왔을 때 이상한 글귀가 써져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기가 막힌 표현법으로 글이 되어 있기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저 그럼 해석 좀 부탁드립니다."
"예. 우선 문왕의 이름은 "창(昌)"이니 "구두 밑창"을 뜻하고 무왕의 이름은 발(發)이니 "걸어다닌 발(足)"을 뜻합니다. 즉 구두밑창이 떨어져서 발이 나왔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니 아침을 뜻하는 것이고, 소공의 이름은 "석(奭)"이니 같은 발음인 "석(夕)"으로 대체되어 저녁을 가리키고, 태공의 이름은 망(望)이니 "바라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붙여서 이해하면 "아침저녁으로 기다리고 있다."라는 겁니다. 어서 새 신을 사서 보내십시오. 사위 발에 돌조각이라도 박히면 따님이 슬퍼하실 겁입니다. 허허허."

이를 들은 장인은 바로 하인을 시켜 신을 사 보내게 했다.
돌아온 하인이 이르기를 정말로 신발 밑창이 떨어져 있다 하니 장인은 그 날 이후 사위의 재능을 의심하는 일이 없었다.

 

 

대단한  글 재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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