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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 미술관 기행 [24회]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6옥 ‘이단’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 미술관 기행 [24회]

 

  •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5.01.1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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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6옥 ‘이단’
 

보티첼리(1445∽1510)는 1480년부터 1500년 사이에 단테의 『신곡』 삽화 102점 (9점은 소실되었고, 4점만 채색되었다)을 그렸다.
이 삽화들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두 곳의 박물관과 바티칸의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보티첼리, 이교도와 무신론자의 처벌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2007, p 44)

보티첼리는 1481년에서 1487년 사이에 제6옥(제10곡) ‘이단’의 삽화를 그렸는데 채색은 극히 일부분만 되어 있다. 이 삽화는 이탈리아 바티칸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면 제6옥 제10곡 ‘이단’을 살펴보자.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무사히 이교도의 성(城)인 디스시(市)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자마자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곳은 론 강가의 공동묘지처럼 온통 무덤들 천지였다. 무덤 뚜껑은 다 열려 있었는데 한숨과 신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모든 이교도 분파의 두목들과 추종자들, 그리고 이단자들이 누워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으슥한 좁은 길을 따라서 도시의 성벽 사이를 걸어갔다. 단테가 그의 뒤를 따랐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물었다.
“무덤 속에 누워있는 자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도 보이는지요?
뚜껑이 다 열려 있는데 감시하는 자가 없군요.”

베르길리우스가 답하였다.
“저들이 세상에 두고 온 육체를 다시 지니고
여호사밧에서 이리로 돌아올 때
이 무덤들은 영원히 닫히고 봉인될 것이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처의 골짜기로, 최후 심판의 날에 모든 영혼은 이곳에 모여 자기 육신과 다시 결합한다고 한다. (여호사밧은 구약성서 예언서 요엘서 제3장 제2절에 나온다.
요엘은 선지자로 추정되는데 ‘여호와께서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라’(제1장 첫 머리)는 구절외에 다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요엘은 ‘여호아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한 그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중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여” (요엘서 제3장 제2절)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이어진다.
“다른 곳에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그 추종자들이 무덤에 갇혀 있는데
몸이 죽을 때 영혼도 죽는다고 주장했던 자들이다.”
(그리스 에피쿠로스 학파는 기원전 306년경 만들어진 학파로 철학을 행복 추구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행복이란 일종의 정신적 쾌락으로, 그것을 추구하여 얻어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바로 그때 한 무덤에서 돌연히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 토스카나 사람이여! 이곳에 잠깐 멈추시겠소.
당신의 말투로 보니 당신은 나의 고향인 피렌체 사람이군요.
나도 거기서 너무나 힘들었지.”
단테는 덜덜 떨면서 베르길리우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눈으로 보아라. 저 파리나타를. 꼿꼿이 섰으니 허리 위로는 다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단테가 파리나타의 무덤에 이르자, 그는 얕보는 말투로
“당신 조상들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단테가 숨김없이 대답하면서 자신은 파리나타가 속했던 기벨린당(황제당)이 아닌 반대당인 겔프당(교황당)임을 밝혔다.

파리나타가 말했다.
“당신 조상들은 나와 내 조상들,
그리고 나의 파벌에 언제나 반대했어.
그래서 난 두 번이나 그들을 격퇴했지.”

파리나타는 1248년과 1260년 두 번의 전투에서 기벨린당을 승리로 이끌었던 정치가이다.
특히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겔프당은 참패했고, 승리한 기벨린당은 피렌체를 파괴하길 원했다.
하지만 파리나타는 이에 적극 반대했고, 결국 피렌체는 살아남았다. 그런데 파리나타는 단테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264년에 죽었다. 그런데 그는 아내와 함께 이단자로 선고받았다.

이에 단테가 대답했다.
“나의 조상들은 쫒겨나긴 했어도 언제나 돌아왔소.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런데 당신 쪽은 그런 기술을 익히지 못한 것 같소.”

바로 그때 다른 망령이 일어나 울먹이며 말했다.
“내 아들은 어디에 있는 거요?
왜 당신과 함께 있지 않는 거요?”

그는 단테와 절친한 친구인 귀도 카발칸티의 아버지였다.

단테는 무의식 중에 귀도가 죽었다고 말한다. (귀도는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단테는 그에게 『신생』을 헌정한 바 있다. 그런데 귀도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다가 1300년 8월에 말라리아로 죽었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카발칸티의 아버지는 슬픔에 잠겨 사라졌다.

한편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서둘러 오라고 불렀다.

단테는 누가 또 무덤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물었다.
“수천의 망령들이지. 이 안에는

폐테리코 2세(프리드리히 2세, 1220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올랐다.
십자군 원정 문제로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다)가 누워있고, 우리구역에는 추기경(1245년에 추기경이 된 오타비아노 델리 우발디니이다.
이단자들의 추종을 방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도 있지. 나머지는 말하지 않겠어.”

이윽고 단테 일행은 성벽을 지나서 골짜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갔다.
골짜기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 참고문헌 )
o 단테 지음 · 박상진 옮김, 신곡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2007

o 윌리스 파울리 지음 · 이윤혜 옮김, 쉽게 풀어쓴 단테의 신곡 –지옥편, 예문, 2013

o 실비아 말라구치 지음 · 문경자 옮김, 보티첼리, 마로니에북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