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여행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일본역사기행(71)-나라 호류지(法隆寺) (9) - 옥충주자 (玉蟲廚子) 기자명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일본역사기행(71)-나라 호류지(法隆寺) (9) - 옥충주자 (玉蟲廚子) 

  • 기자명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  입력 2024.05.27 04:00
  •  댓글 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백제관음당에서 백제관음상을 보고 나서 동보전(東寶殿)으로 이동하였다. 동보전에 들어가자마자 아스카 시대 국보인 옥충주자(玉蟲廚子 일어로는 다마무시노즈시 たまむしのずし)가 있다. 옥충(玉蟲)은 비단벌레를 가리키는 일본식 명칭이고, 주자(廚子)는 부처님을 모신 미니어처 건물이다. 옥충주자라 이름 붙인 것은  금속 장식에 2,563마리의 비단벌레(옥충)의 날개를 넣어 비취색을 냈기 때문이다. 

먼저 ‘대보장원 안내문’의 옥충주자 부분을 읽는다. 안내문은 일어와 영어로 되어 있다. 

“옥충주자는 높이 226.6cm인데 편백나무와 녹나무로 만들어졌다. 
호류지 기록에 따르면, 옥충주자는 일본 33대 천황이자 일본 최초의 여성 천황인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554~628 / 재위 기간 592~628)의 개인 소유로 전해진다. (스이코 천황은 쇼토쿠 태자에게 섭정을 맡겼다. -필자 주) 
 상단인 전각에는 두 명의 사천왕과 석가모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하단에는 석가모니의 전생(前生)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려져 있는데 굶주린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바친 이야기이다. 즉 사리공양도(舍利供養圖), ‘시신문게도(施身聞揭圖)’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수미산 세계도(須彌山世界圖)가 그려져 있다.”  

대보장원 안내문. 사진=김세곤

사진에서 보듯이 옥충주자는 3단으로 되어 있다. 하단은 기단이고, 중단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그림, 상단은 전각이다.  

옥충주자 – 앞면 그림이 사리공양도이다. (출전 : 불광미디어 유튜브, 지미령, 호류지의 비불, 구세관음) . 사진=김세곤

그러면 상단부터 살펴보자. 전각의 문짝을 열면 사천왕(四天王)이 있고.그 안에 가부좌한 부처님 불상과 좌우에 두 명의 보살이 있다. 두 보살 앞에는 연꽃이 놓여 있다. (사천왕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을 말한다.) 

 

중단에는 4면에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묘사한 본생도(本生圖)가 그려져 있다. (본생도는 본생담 本生譚이라고도 하고 산스크리트어로 자타카 Jataka라 한다.)

본생도는 나를 희생하여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사신구사’(捨身求死)의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중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가 자신의 몸을 굶주린 호랑이에게 보시한 살타 왕자 이야기이다. 

“옛날에 마하라타라는 임금이 있어, 선한 법을 닦으며 나라를 잘 다스려서 원수나 대적이 없었다. 임금은 아들 삼 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얼굴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몸매가 훌륭하고 위엄과 덕행이 놀라웠다. 맏이는 마하파나라 둘째는 마하제바이고, 막내는 마하살타(摩訶薩陀) 왕자였다. 어느 날 세 왕자는 동산을 노닐다가 큰 대숲속에 이르러 쉬고 있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호랑이는 새끼를 낳은 지 이레가 되었는데, 어미 호랑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먹이려다가 
굶주림을 못 견디어 자신의 새끼를 도로 먹으려 하였다.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보시하기로 결심한 살타왕자는 두 형을 먼저 보낸 후 호랑이가 있는 곳에 이르러 몸을 던졌다. 그러나 굶주린 호랑이는 입을 다물고 먹지 못하였다. 그때 살타 왕자는 날카로운 나무 꼬챙이로 자기 몸을 찔러 피를 내었다. 호랑이는 그 피를 핥다가 그때야  입을 벌려 곧 왕자의 몸을 먹었다. 

두 형은 오래 기다렸으나 아우가 돌아오지 않아 그 자취를 따라 찾아가면서 조금 전에 나누던 아우와의 말을 생각하였다. “반드시 그 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언덕에 올르니 살타 왕자가 호랑이 앞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는 벌써 그것을 먹고 있는데 피와 살이 낭자하였다.”

옥충주자에는 각 면에 사리공양도(舍利供養圖), ‘시신문게도(施身聞揭圖)’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수미산 세계도(須彌山世界圖)’가 그려져 있다.   
특히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에는 옷을 걸어놓고 땅에 떨어진 살타 왕자, 어미 호랑이와 두 마리 새끼 호랑이가 왕자의 몸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리얼하다. 

사신사호도. 사진=김세곤

한편 옥충주자는 기법이 너무나 정교하고 세련되었기에 아스카 시대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보내줬다고 보는 주장도 있는데, 페넬로사가 단정적으로 “590년 무렵 백제에서 스이코 천왕에게 보내준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에 재질이 편백나무와 녹나무로 되어 있어 백제 도래인 기술자가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2  아스카·나라, p 153-154)

(참고자료)
o 불광미디어 유튜브, 지미령, 호류지의 비불, 구세관음
o 유홍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2 아스카·나라,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