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여행

김세곤의 유럽 여행 단상(斷想)- 독일 프랑크푸르트(3) 괴테하우스

김세곤의 유럽 여행 단상(斷想)- 독일 프랑크푸르트(3) 괴테하우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호남역사연구원장)

 

 

33111, 독일낭만박물관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괴테 갤러리가 나온다. 여기에는 괴테 가족과 괴테에 관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가 잘 아는 그림도 있다. 독일의 대표적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책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이탈리아 기행 초상화이다.

 

사진 1 괴테 초상화 (이탈리아 기행)

 

다시 매표소 입구로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괴테하우스(생가)를 안 본 것이다. 정원 쪽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니 괴테 하우스가 나온다.

 

괴테 하우스는 19978월에 처음 방문한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필자는 19966월부터 19986월까지 영국 워릭대 대학원 유학을 하였는데, 석사학위 논문(제목:영국과 독일의 근로자파견제도 비교) 준비를 위하여 독일을 갔을 때 괴테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그때는 집이 매우 넓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좁다. 알고 보니 2021년에 괴테 하우스 부지에 독일 낭만박물관이 준공되어 생가 부지가 줄어든 것이다.

 

괴테하우스는 4층으로 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폭격으로 송두리째 파괴되었으나 1951년에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집의 가구나 소품들은 미리 다른 곳에 보관하여 온전할 수 있었단다.

 

먼저 유튜브에서 본 1층의 부엌부터 보았다. 거기엔 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괴테가 태어난 1749년 무렵은 독일의 가정집들이 냇가와 우물에서 물을 퍼서 썼는데, 매우 부유한 괴테 집안은 부엌 안에 물이 나오게 해 수도 시설을 한 것이다.

()를 이룬 이는 괴테의 조부였다. 조부는 원래 재단사였으나 호텔과 식당 경영과 포도주 매매로 거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원래 괴테하우스는 할머니 집이라고 괴테는 자서전에서 밝혔다.)

 

사진 2 부엌의 수도 시설

 

1층을 대충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서 안내원에게 한글판 해설서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코팅이 된 한글 설명서 한 장을 준다. 여기엔 1층과 4층 배치도와 각 방의 설명이 적혀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2층을 구경했다. 2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이 잘 안난다. ‘북경이라는 방 이름만 기억할 뿐.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괴테가 태어난 탄생의 방이 있다.

창문 옆에는 작은 액자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괴테가 세례를 받은 기사가 실린 1749729일 자 프랑크푸르트신문 스크랩이 있고, 그 밑에는 자필로 된 괴테의 탄생을 알리는 메모가 있다.

 

사진 3 액자에 있는 괴테 세례 신문 기사

 

괴테는 법률가이자 명예직 황실 고문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액자 옆에는 독일어와 영어로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의 첫 부분이 세워져 있다.

 

“1749828,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는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났다. 나의 탄생 별자리는 아주 좋았다. 태양은 처녀궁 자리에 위치하여, 그날의 정점에 이르고 있었다. 목성과 금성은 다정스럽게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고, 수성도 반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며, 토성과 화성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때마침 만월이었던 달만은 동시에 행성시(行星時 달이 모든 생물에 대하여 특별한 위력을 가지는 시간. 목요일 11-12)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한층 충위(衝位)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때문에 달이 방해하여, 이 시각이 지날 때 까지 나의 탄생은 끝나지 않았다.

 

이 경사스러운 성좌는 뒷 날 점성가들이 나를 위해서 높이 평가해 주었던 것인데, 내가 목숨을 건진 것도 이 성좌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미숙한 산파의 분만 처리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태어났던 나는 주위 사람들이 애쓴 덕분에 비로소 눈을 뜨고 빛을 볼 수 있었다.”

 

사진 4 괴테의 탄생 (자서전 시와 진실’)

 

천신만고 끝에 태어난 괴테는 아버지로부터 외모와 삶을 진지하게 이끌어가는 방식을, 어머니로부터는 쾌활한 성격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지어내려는 욕망을 물려받았다.

 

한편 괴테에게는 한 살 아래인 누이동생 코르넬리아가 있었는데, 자식 교육에 관심이 지대했던 아버지는 훌륭한 가정교사를 채용했고, 직접 오누이를 가르치기도 했다. 괴테가 배운 외국어는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불어, 히브리어 등이었다.

 

이어서 괴테 초상화를 보았다. 매우 잘 생긴 얼굴이다. 율리 폰 에글로프슈타인이 그린 초상화인데 자서전 시와 진실집필 당시(1809년에 집필을 시작함, 60)의 모습이란다.

 

사진 5 괴테 초상화

 

초상화 옆에 있는 별과 칠현금장식물도 사진 찍었다. 이 장식물은 괴테의 삶과 죽음이라는 고리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는 데 괴테의 시신을 안치했던 18323월 당시 바이마르에 있던 그의 집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사진 6 별과 칠현금 장식물

 

사진 7 괴테 하우스 한글판 해설서

 

 

( 참고문헌 )

 

o 쾨테 지음 · 최은희 옮김, 시와 진실, 동서문화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