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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김세곤의 근현대사기행] 대구 근대 골목투어 (4) 박정희와 육영수의 맞선

[김세곤의 근현대사기행] 대구 근대 골목투어 (4) 박정희와 육영수의 맞선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저자)

 

박정희가 민간인 신분에서 소령으로 복직된 1950628일에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였다. 북한 부수상겸 외상 박헌영은 일장 연설을 하였다.

 

이와같은 엄숙한 시기에 왜 남조선 인민들은 모두 떨쳐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까. 무엇을 주저하고 계십니까? 모든 인민들은 하나같이 일어나 전 인민적, 구국적 정의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북한은 전쟁이 일어나면 남로당이 대규모 봉기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박헌영의 선동에 호응한 남로당원은 별로 없었다. 더구나 여순 14연대 사건 이후 군대 내 숙군 작업으로 남로당 출신 군인들의 봉기는 아예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북한군은 628일 서울 점령이후 3일간 머뭇거리면서 한강을 건너지 않았다. 이는 김일성의 최대 실수였다.

 

한편 김일성은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미국 트루만 대통령은 즉각 대응했다. 트루만은 해·공군을 운용하도록 지시하였으며, 626일에 유엔 안보리는 공산군에게 무력도발 중지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하지만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한을 점령하여 부산-낙동강 전선만 남았다. 박정희 전투정보과장은 낙동강 전선 상황지도를 매일 바라보고 있었다.

 

8월 중순에 박정희의 대구 사범학교 1년 후배인 송재천 소위가 박정희를 찾아왔다. 송재천은 고향이 충북 옥천인데, 옥천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6.25가 터져 장교가 된 것이다. 박정희는 졸업하고 처음 보는 후배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자기 밑(전투정보과)에서 포로 심문관으로 일하도록 하였다.

 

어느 날 송재천 소위는 박정희 소령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과장님 왜 혼자 사십니까. 가족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고 위로도 될 것 아니겠습니까

글쎄, 좋은 색시가 있어야지.”

제가 좋은 색시를 소개할까요.”

 

며칠 뒤 송재천은 박정희에게 옥천 외가 쪽으로 동생뻘 되는 육영수(19251974)를 소개했다. 배화여고를 나온 옥천 부잣집 둘째 딸이고, 나이는 26세라 했다. ( 육영수는 박정희(19171979)보다 8살 아래인데, 이현란과 동갑이다.)

 

제가 보기에는 만점인데 과장님이 보시면 만점이 될지, 영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저 그런 색시가 있느냐고 말했다.

 

당시에 박정희는 이화여대생 이현란과 3년간 동거생활을 하다가 남로당숙군 작업으로 감옥에 들어간 이후, 이현란이 무단 가출하여 박정희는 그녀를 늘 못 잊어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이현란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단다. 당시 육본 보급실장 김재춘 소령은 박정희에게 제발 단념하시고 좋은 규수 만나 장가드십시오.”라고 말했다 한다.

 

며칠 뒤 송재천은 다시 육영수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박정희는 그럼 한 번 만나 보기나 할까라고 답했다.

 

송재천 소위는 그 길로 영도에서 피란살이 하고 있는 이모 이경령을 찾아갔다.

 

이모님, 마땅한 자리가 있는데 영수 누이 출가 안 시키겠어요.”

글세, 어떤 사람인데

제가 모시고 있는 상관입니다. 인품이 그만입니다.”

성씨는?”

고령 박씨입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

청렴하고 강직하면서도 인정이 넘치는 분입니다.”

(조갑제 지음, 박정희 2- 전쟁과 사랑, p 128-131)

 

8월 하순이었다. 박정희 소령은 송재천 소위의 안내로 육영수 가족들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영도의 일본식 2층 집을 찾아갔다. 충북 옥천 부자 육종관 내외는 이들을 맞았다. (그런데 박정희는 소주를 몇 잔 마신 상태에서 맞선을 보았단다.)

 

박정희는 허리를 구부려 군화 끈을 풀고 있었는데, 육영수가 은밀히 지켜보고 있었다. 훗날 영부인이 된 육영수 여사는 박목월 시인에게 첫 만남을 이렇게 술회 하였다.

 

맞선 보던 날 군화를 벗고 계시는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든든해 보였어요. 사람은 얼굴로는 남을 속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남을 속이지 못하는 법이예요. 얼굴보다 뒷 모습이 정직하거든요.” (이영호·문무일 지음,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 p 45)

 

이윽고 박정희는 육종관-이경령 앞에 앉고 육영수는 찻잔을 나른 뒤 부모옆에 단정히 앉았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받쳐 입고 있었다.

 

육종관은 박정희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수인사(修人事)에 불과했다. 얼마 후 박정희가 자리를 떴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육영수에게 여동생 육예수가 물었다.

 

언니 어때요

 

육영수는 달아오른 볼을 싸안으며 생글거리기만 했다.

 

언니, 웃는 것 보니 마음에 들었나봐

 

글쎄, 콧날이 날카로워 성깔이 있어 보이더구나. 그런데 주관이 확고하게 서 있는 듯한 눈빛이야

 

이 날 밤 송재천이 육영수를 찾아와 박정희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체격도 작고 볼 품은 없지만 마음은 아주 단단한 것 같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아주 좋던데요.”

 

송재천은 박정희에게도 맞선 본 소감을 물었지만, 박정희는 얼버무렸다.

김재춘 소령이 묻자 박정희는 , 키는 나보다 큰 것 같고, 보기는 봤는데 다시 만나봐야지, 라고 답했다.

 

1950915일 맥아더 원수가 성공리에 인천상륙작전을 완수하던 날 , 박정희 소령은 중령으로 진급하여 대구로 올라가는 육본의 수송 지휘를 맡았다. 전황(戰況)은 점차 호전되었다.

 

 

( 참고문헌 )

 

o 이현희, 박정희 평전, 효민디앤피, 2007

o 전인권 지음, 박정희 평전, 이학사, 2006

o 조갑제 지음, 박정희 2- 전쟁과 사랑, 조갑제 닷컴, 2007

o 이영호·문무일 지음, 육영수의 사랑 그리고 또 사랑, 행복에너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