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 (7) 조선공산당 주도로 조선인민공화국이 설립되다.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 저자 )
역사학자 서중석은 “미군 상륙을 앞두고 9월 6일 조선공산당(약칭 조공)이 앞장서서 여운형과 함께 건준을 확대 개편하여 조선인민공화국(약칭 인공)을 조직한 것은 성급한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20, p 38)
한편 조한성은 ‘해방 후 3년’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인공은 한국인들의 자생적인 건국 운동의 산물이었다. 건준이라는 민족통일전선이 민족통일전선 정부로 발전한 것이다. 건준에서 인공으로 전환을 주도한 것은 박헌영과 재건위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건준에 참여했던 공산주의자를 바탕으로 건준 내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했고, 여운형의 동의를 얻어 건준을 인공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박헌영에게 인공은 8월 테제에서 언급한 ‘인민 정부’의 실현체였다. 박헌영은 인공을 통해 자신의 통일전선전술과 정부 수립방안을 실천하고자 했다” (조한성 지음, 해방후 3년, 생각정원, 2015, p 75)
9월 8일에 인공은 ‘인공내각’을 발표하였다.
내각 명단은 다음과 같다.
주석 :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대리 조동혁·김계림
외무부장: 김규식, 대리 최근우·강진
재무부장: 조만식, 대리 박문규·강병도
군사부장: 김원봉, 대리 김세용·장기욱
경제부장: 하필원, 대리 김형선·정태식
농림부장: 강기덕, 대리 유축운·이광
보건부장: 이만규, 대리 이정윤·김점권
교통부장: 홍남표, 대리 이순근·정종근
보안부장: 최용달, 대리 무정·이기석
사법부장: 김병로, 대리 이승엽·정진태
문교부장: 김성수, 대리 김태준·김기전
선전부장: 이관술, 대리 이민준·서중석
체신부장: 신익희, 대리 김철수·조두원
노동부장: 이주상, 대리 김상혁·이순금
서기장 : 이강국, 대리 최성환
법제국장: 최익한, 대리 김용암
기획부장: 정백, 대리 안기성
그런데 인공 내각 구성은 급조되어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승만은 미국, 김구·김규식·신익희는 중국에 있어 인공이 승낙을 받았을 리 만무했다. 또한 국내에 있는 경우라도 김성수·김병로 같은 우익이 동의할 리 없었다.
한편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은 주석으로 우뚝 섰는데, 중국 중경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내무부장으로 홀대를 받았다. 그런데 여운형이 김구를 뛰어넘어 부주석으로 임명되자 우익의 타도 대상이 되었고 결국 1947년에 암살당했다.
주목할 것은 국무총리 허헌과 군사부장 김원봉이다. 일제강점기 노동자, 빈민층 등을 위한 재판에 변호사로 활동한 허헌은 1946년 11월 남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되었고, 1947년경에 월북하여 1948년 8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 서훈 논란이 있었던 의열단장 김원봉은 1948년에 월북하여 북한 초대 내각 국가검열상이 되었다.
한편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는 9월 7일 ‘국민대회준비회’를 결성하였다. <동아일보>사옥에서 결성된 ‘국민대회준비회’에는 송진우, 김성수, 서상일,원세훈, 김준연, 장택상,윤치영등 우익이 참여하였다. 9월 8일에 ‘국민대회준비회’는 성명을 내고 “국제적으로 중경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외에 정권을 참칭하는 일체의 단체 및 그 행동을 단호하게 배격한다”고 선언하였다. 즉 인공을 타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훗날 조병옥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국민대회준비위(훗날 한국민주당)의 첫 사업은 해방 직후 재빠르게 건준과 좌익분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인공을 제거하는 데 있었다”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p 80-81)
9월 8일 오전에 미국 제24군단 사령관 하지 육군 중장이 인천항에 입항했다. 다음날인 9월 9일 오후 4시 반에 하지 중장과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광화문에 있는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항복 조인식을 가졌다. 때맞추어 조선총독부 정문에는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높이 솟아 올랐다. 바야흐로 미군정 시대가 막이 오른 것이다.
9월 10일에 한민당 준비위를 대표하여 조병옥 윤보선 등이 미 군정장관을 만나 인공은 “일본과 협력한 한인집단”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여운형은 “한인들에게 잘 알려진 부일협력 정치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날 하지 중장의 개인 통역관이 된 한민당 지지자 이묘묵도 명월관에서 미군정 관리들에게 여운형은 잘 알려진 ‘친일파’이며 인공은 ‘공산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군정은 이묘묵의 이 발언을 믿었다.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p 81-82)
(참고문헌)
o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인물과 사상사, 2004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2, 탐구당, 2003
o 김기협, 해방일기 1, 너머북스, 2011
o 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 돌베개, 2013
o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웅진지식하우스, 2020
o 이완범 저, 한국해방 3년사, 태학사, 2007
o 조한성 지음, 해방 후 3년, 생각정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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