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6) 조선공산당 주도로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이 수립되다.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 저자 )
태평양 방면 미 육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가 일본에 첫 발을 디딘 날은 1945년 8월 30일이었다. 9월 2일에 맥아더 총사령관은 요코하마 해상의 미주리 함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9월 5일 오후 1시 미 제24군단장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42척의 대 선단 이 오키나와를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미군의 남한 진주가 임박하자 건준을 장악한 조선 공산당의 박헌영은 여운형의 동의를 얻어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을 해체시키고 ‘조선인민공화국 (약칭 인공)’을 수립했다.
건준은 9월 6일 오후 9시 경기고녀(경기여고의 전신) 강당에서 전국대표 1천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인민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여성의 개회선언이 있자 곧 의장 선출에 들어가, 위원장 여운형이 등단하여 개회사를 하였다.
여운형은 비상한 시기에 연합국의 진주에 대비하여 "연합국과 절충할 인민대중의 집결체"로서 인공이 수립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혁명가는 정부를 조직하고 인민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인민이 승인만 한다면 조선인민공화국과 그 정부는 그대로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38도선 이북에 있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각도 관공서와 일본인 공사 재산을 압수하고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켜, 모든 것을 조선 인민에게 맡길 뿐 그 목적이 없는 듯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소련군의 조치를 당연히 연합군의 공동한 최고방침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였으며 미군도 38도 이남에 진주하여 오면 역시 조선 인민에게 모든 것을 맡으라 할 줄 예상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맡을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급히 인민대표회의를 열어 국호를 결정하고 정부조직법을 결정하며 인민위원을 선거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 김무용 (2005).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국가건설 운동》. 박사학위논문(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 출처, 위키 백과, 조선인민공화국)
개회식이 끝나자 전원이 기립해 해방전선에서 희생한 선배 · 동지들의 추도 묵상이 있고 국가 제창이 있은 후, 건준 부위원장 허헌의 경고 보고가 있고 이어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조직기본법 초안을 축조 낭독해 다소의 수정을 가해 이를 통과시킨 후, 다음과 같은 정강과 시정방침을 발표하였다.
1.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적 잔재 세력을 일소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기한다.
2. 일본제국주의의 법률·제도를 즉각 철폐한다.
3.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 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한다.
4.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 반역자들의 공장·광산·철도·항만·선박·통신 그밖의 모든 시설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
5.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6.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만 14세 이하의 유년노동을 금지하며,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한다.
7. 국제평화 유지를 위한 우방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중요시한다.
(정일준,<해방직후 분단국가 형성에 관한 일고찰>,≪해방직후의 민족문제의 형성과 사회운동≫, 창작과 비평사, 1990, 128쪽)
이윽고 인공은 인민 위원 선거에 들어가 위원장, 부위원장을 더한 5명의 전형위원을 선정해 55명의 중앙인민 위원, 후보위원 30명, 고문 12명을 발표했다.
이 날 선정된 중앙 인민위원과 후보위원, 고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중앙인민 위원(55명)
이승만, 여운형, 허헌, 김규식, 이관술, 김구, 김성수, 김원봉, 이요설, 홍남표, 김병로, 신익희, 안재홍, 이주상, 조만식, 김기전, 최용달,
이강국, 김용암, 강진, 이주하, 하필원, 김계림, 박낙종, 김태준, 이만규, 이여성, 김일성, 정백, 김형선, 이정윤, 김점권, 한명찬, 유축운, 이승엽, 강기덕, 조두원, 이기석, 김철수, 김상혁, 정태식, 정종근, 조동호, 서중석, 박문규, 박광희, 김세용, 강병도, 이순근, 무정, 장기욱, 정진태, 이순금, 이상훈
후보위원 (20명)
최창익, 황태성, 홍덕유, 이청원, 최근우, 김준연, 한빈, 양명, 최원택,
안기성, 정재달, 김오성, 권오직, 김두수, 장순명, 이광, 최성환, 이림수, 현준혁, 김덕영
고문 (12명)
오세창, 권동진, 김창숙, 정운영, 이시영, 홍명희, 김항규, 김상은, 장도빈, 김용기, 김관식, 이영
여기에서 중앙 인민위원 55명의 성향을 보면 42명이 좌익이거나 공산주의와 관련 있는 자였고, 민족주의자나 우익은 13명에 불과했다. 특이한 것은 정작 인공 수립을 주도한 박헌영은 인민위원 명단에 포함 안 된 점이다. 아마도 배후에서 인공을 조종하려는 속셈이었던 같다.
또한 당시에 소련에 있던 김일성이 인민위원에 포함된 것도 눈에 띈다. (김일성은 9월 19일에 귀국했다)
9월 7일에 건준은 모든 사업을 인공으로 넘기고 ‘발전적 해소’라는 미명 아래 해체되었다.
인공이이 건준와 동시에 급조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미군정 실시에 직면한 여운형과 박헌영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해방정국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좌파 세력은 형식적이라도 국내 각계 각층의 사회세력들이 참여하는 정치 세력들을 만들어 미군정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주도권을 장악하여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둘째, 중경의 임시정부와 맞설 수 있는 정치조직을 만들 필요성이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중경의 임시정부보다 우월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좌 ·우익, 국내 · 외를 망라한 명망가를 다수 포함시켰다.
(참고문헌)
o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인물과 사상사, 2004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52, 탐구당, 2003
o 이완범 저, 한국해방 3년사, 태학사, 2007
o 조한성 지음, 해방 후 3년, 생각정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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