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노래 (35)
- 김시습과 서거정의 인연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65년(세조 11년) 4월에 김시습의 부탁을 받은 서거정은 경주 남산 금오정사 제시(題詩) 6수를 지었다. 시를 감상하여 보자. (서거정의 문집인 『사가집』 제12권에 실려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인터넷사이트, 한국고전종합DB)
봄 경치
적적한 봄 산중에 절집은 적적한데 春山寂寂一招提
마음 내키면 죽장망혜로 한가로이 거니네 隨意閑行輒杖鞋
영롱한 대나무 빛은 작은 섬돌에 비치고 竹色玲瓏侵小砌
은은한 꽃향기는 앞 시냇가를 건너가네 花香荏苒渡前溪
한가한 구름 지친 새는 아무 생각이 없고 閑雲倦鳥思無累
흐르는 물 높은 산은 이치는 본래 같고 流水高山理本齊
때로는 출정했다가 다시 입정하곤 하여라 出定有時還入定
선심(禪心)은 이미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가 되었네 禪心已作絮霑泥
불가(佛家)에서 선정(禪定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 수행)을 끝내고 나오는 것을 출정(出定)이라 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것을 입정(入定)이라 한다.
선심(禪心)은 마음이 아주 고요하게 가라앉아 전혀 동요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소동파가 일찍이 서주(徐州)에 있을 때 승려 삼요(參寥)가 찾아왔다. 소동파가 한 기녀로 하여금 장난삼아 삼요에게 시를 요구하도록 하자, 삼요가 시 한 수를 읊었다.
술동이 앞의 얌전한 낭자가 많이 고맙지만 多謝尊前窈窕娘
그윽한 꿈 좋게 가져가서 양왕이나 꾈지어다. 好將幽夢惱襄王
선심(禪心)은 이미 진흙에 붙은 버들개지가 되어 禪心已作霑泥絮
동풍을 쫓아 위아래로 미친 듯 날지 않는다오. 不逐東風上下狂
승려는 기녀에게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름 경치
푸른 산은 그윽하여 깊고 또 깊고 靑山窈窕深復深
용 같은 고목들은 넓은 그늘을 펼쳤는데 老樹如龍布樾陰
절벽의 폭포는 공중에 뿌려 눈발을 이루고 巖溜洒空渾作雪
골짝 가득 솔바람은 거문고 소리 방불하리 松濤滿壑響於琴
흰 구름은 아득해라 황학이 날아오르고 白雲渺渺飛黃鶴
푸른 대는 흔들려라 취금(물총새)가 스쳐가겠지 綠竹搖搖拂翠禽
인간에 땀이 비 오듯 흐름을 못 믿고말고 未信人間汗如雨
창 앞은 한여름도 가슴이 시원할 테니까 軒窓六月爽煩襟
당나라 시인 최호(崔灝 704~754)가 일찍이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시를 지었다. 황학루는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汉市) 장강(长江) 가의 사산(蛇山)에 있는 누각으로 강남 3대 명루의 하나이다. 삼국시대 오(吴)나라 손권이 223년에 성을 쌓고 황학루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옛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났는지라 昔人已乘黃鶴去
이 땅에는 공연히 황학루만 남았네그려. 此地空餘黃鶴樓
황학이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黃鶴一去不復返
흰 구름만 천재에 부질없이 왕래하누나. 白雲千載空悠悠
일설에 따르면 744년에 이백(李白 701~762)이 황학루에 올라 최호의 시를 발견하고 찬탄을 금하지 못하였으며, 황학루 시를 쓰려했으나 최호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함을 탄식하며 붓을 씻었다 한다.
가을 경치
초당의 가을비가 오동잎 떨어뜨리면 草堂秋雨滴梧桐
한바탕 서늘한 기운이 집 안에 가득하네 一陣新涼滿院中
물 북쪽 남쪽엔 갈대꽃 하얗게 피고 水北水南葦花白
산 앞뒤 쪽엔 버들잎 붉어지네 山前山後檉葉紅
하늘 땅 만리 멀리엔 기러기가 높이 날고 乾坤萬里高飛鴈
바람 이슬 찬 삼경엔 귀뚜라미 홀로 울겠지 風露三更獨語蛩
한밤중의 회포가 흡사 물처럼 깨끗할 제 入夜情懷淸似水
창공의 밝은 달은 누각 동쪽에 떠오르리 碧空明月小樓東
겨울 경치
쌓인 눈 날려날려 하얀 옥이 일만 층이고 積雪飛飛玉萬層
산중엔 길이 없고 얼음판만 미끄럽네 山中無路滑凝氷
질화로엔 온종일 향 연기가 타오르고 瓦爐終日香煙裊
온돌은 밤새도록 불기운이 왕성하네 土突通宵火氣騰
눈 쌓인 솔바람은 문풍지를 마구 울려대고 松雪撼風鳴紙帳
매화는 달빛에 섞여 깁 바른 등을 비추는데 梅花和月映紗燈
포단에 가부좌하고 조용히 앉아서는 蒲團黙黙跏趺坐
손님이 짜증 내건 말건 불러도 대답 없네 客至從嗔喚不應
‘손님이 짜증 내건 말건’은 두보의 시에 나온다.
수많은 봄 죽순이 대숲 가득 자라나서, 無數春笋滿林生
사립문 굳게 닫아 사람 왕래를 끊었노니, 柴門密掩斷人行
반드시 첫 번째 죽순이 대 이루는 걸 보려고, 會須上番看成竹
손님이 와서 짜증 내건 말건 나가 맞이하지 않네. 客至從嗔不出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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