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 (newscj@newscj.com)
- 승인 2022.03.17 18:38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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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9월 5일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11월 2일에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를 한국 특파대사로 임명했다.
11월 5일 송병준이 주도한 일진회는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위임하는 것이 독립을 유지하고 영원히 복을 누리는 길”이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을사오적보다 더 나쁜 매국노들이었다.
11월 10일에 이토는 고종에게 메이지 천황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다시 알현하길 청했다. 그런데 일본은 11월 11일에 이토 대사 접대비 명목으로 무기명 예금 증서 2만원(시가 환산 25억원)을 경리원경 심상훈을 거쳐서 황실에 납입시켰다. 이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주한일본공사관기록 24권, 11 보호조약 1-3’에 나온다.
11월 15일에 고종과 이토는 4시간 동안 단독 회담을 했다. 이토는 조약안을 고종에게 내밀었다. 고종은 이토에게 외교 형식이라도 보존해 달라고 매달렸지만, 이토는 변통의 여지 없는 확정안이라고 거절했다.
고종은 전·현직 정부 신료와 상의해야 하고 인민의 의향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토는 전제 군주가 인민의 뜻을 살피겠다는 것은 인민을 선동하려는 저의라고 항의했다.
마침내 고종은 외부대신끼리 협의 사항을 정부가 검토한 후에 짐이 재가하겠다고 이토에게 말했다.
11월 16일 오후에 이토는 정부 대신들을 손탁호텔로 불러 조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참정 한규설이 외교의 형식만이라도 남겨 달라고 간청했으나, 이토는 ‘절대 불가’라고 못 박았다.
11월 17일 오전 11시에 한규설 등 대신 8명은 일본 공사관에 모였다. 일본 공사 하야시는 조약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대신들은 선뜻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비로소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 당장 토의해 의결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추원에서 여론을 수렴해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야시는 언성을 높이며 반박했다.
“귀국은 전제국가인데 어찌하여 입헌정치 흉내를 내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려 합니까? 황제가 응당 한마디 말로써 직접 결정하는 것인데 의견 수렴 운운으로 모면하려고 합니까?”
오후 3시쯤에 하야시는 대신들을 이끌고 대궐로 향했다.
이윽고 어전회의가 열렸다. 고종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여러 번 물었다. 대신들은 조약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러자 고종은 일단 결정을 미루자고 했다.
이때 이완용이 아뢰었다.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조약의 내용 중에 첨삭하거나 개정할만한 중대한 사항을 상의하자는 것입니다.”
이완용의 말은 조약 체결 거절은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었다. 할복이라도 하면서 거절해야지, 조약안 첨삭·수정을 미리 대비하자니 이게 매국의 징조였다.
그런데 고종이 타당하다고 말하자 조약안의 첨삭·수정 회의가 진행됐다.
권중현이 아뢰었다. “신이 외부(外部)에서 얻어 본 일본 천황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조약 조문에는 없습니다. 응당한 조목을 만들어야 합니다.”
고종은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황실의 안녕만 챙기는 고종의 모습이 돋보인다.
회의가 끝날 무렵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이상 아뢴 것은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들은 한 마디로 조약 체결을 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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