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노래 (14)
- 남효온의 소릉 복위 상소 (5)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78년 4월 8일에 이심원은 성종의 구언교(求言敎)에 답하면서 권문세족과 그 집안 노비들의 사채놀이를 금하라고 아뢰었다.
“원하건대 전하는 권문(權門)의 사채(私債)를 금하여 궁한 백성을 살게 하소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만약 사채를 금하면 가난한 자가 의뢰할 곳이 없으니, 아직 그대로 두어서 궁(窮)하고 굶주리는 것을 구제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궁한 백성을 진휼하고 구제하는 것은 바로 수령의 책임이며 권문에서 사사로이 할 바가 아닙니다. (...) 지금 양민과 공천은 날로 더욱 유리(流離)하여 부자(父子)가 서로 보호하지 못하고 부부가 서로 돌보지 못하니, 민생(民生)의 어려움이 오늘보다 심함이 없으며, 나라의 근본이 튼튼하지 못합니다.”
이윽고 이심원은 감사(관찰사)를 신중하게 임명하여 그 벼슬에 오래 있게 하면서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제대로 인사 평정할 것을 건의했다.
또한 그는 유능한 유현(遺賢)을 발탁할 것을 건의했는데, 함양현에 사는 정여창, 태인현에 사는 정극인, 은진현에 사는 강응정이 그렇다고 언급했다.
다음으로 이심원은 공경대부의 사치를 비판했다.
“신이 듣건대 세종조(世宗朝)에는 공경대부로 부유한 자가 심히 드물었고 풍속이 검소함을 숭상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이제까지도 이를 칭송하는데, 이제는 위로는 공경대부부터 아래로 일반 백성에까지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작은 이익도 챙기고, 사치를 숭상하고 잔치에는 먼 지방의 진미(珍味)가 상에 가득하고 혼인에도 먼저 재산을 따지기 때문에 사치 아니하는 자가 극히 드뭅니다. 퇴폐한 풍속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탄식할 만합니다. 청컨대 공경대부들에게 사치에 관계되는 일을 일체 금하게 하소서”
마침내 이심원은 비판의 칼날을 세조 때부터 권력을 장악해 온 훈구공신에게 겨누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모두 어질다고 여기십니까?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가 섞였다고 여기십니까? (...) 우리 세조께서는 하늘이 준 용맹과 지혜, 해와 달과 같은 밝음으로 사람을 쓰는 데에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장점과 단점을 비교하고 한 가지 재주라도 뛰어난 자는 모두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대의 선비가 반린부익(攀鱗附翼 :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는다는 뜻. 제왕에게 붙어서 공명(功名)을 이룸)하여 모두 등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하의 밝음은 세조 임금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 당시의 신하들을 모두 중용하고 계시니, 벼슬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 어찌 잘못이 없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께서 무인년(1458년)에 예종(睿宗 1450∽1469, 재위 1468-1469)에게 훈계하시기를, ‘나는 어려움을 당하였으나 너는 태평할 것이다. 일은 세상을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네가 내 행적(行跡)에 갇혀 변통할 줄을 모른다면, 그것은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끼워 맞추는 격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좌전(左傳)》에 이르기를, ‘사시(四時)의 차례처럼 공업(功業)을 이룬 물러난다.’고 하였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신하가 총애(寵愛)와 이익으로 이루어 놓은 공업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원토록 아름다움을 보전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깊이 헤아리소서.”
이심원은 성종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촉구했다. 세조때 부터 권세를 누리고 있는 훈구 공신들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김일손의 후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자의 노래 (16)- 남효온의 상소 (1)- 18회 (0) | 2022.02.17 |
---|---|
순례자의 노래 (12)- 남효온의 소릉 복위 상소 (3) (0) | 2022.02.11 |
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178)- 역사에 오점을 남긴 이극돈 (0) | 2022.02.08 |
순례자의 노래 (11) 남효온의 소릉 복위 상소 (2) (0) | 2022.01.30 |
순례자의 노래 (10)- 남효온의 소릉 복위 상소 (1) (0) | 2022.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