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7)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미성년'
승인 2020-09-07 07:00:0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871년 7월 8일, 도스토예프스키 부부는 4년 3개월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만삭의 몸으로 귀국한 아내 안나는 8일 뒤 아들을 순산했다. 아들의 이름은 자기 이름인 표도르를 그대로 딴 포도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다소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아내 안나의 살림 솜씨 덕분에 재정 형편도 훨씬 좋아졌다. 1973년 1월에 안나는 소설 『악령』을 직접 출간했는데 그 수입이 상당히 짭짤했다.
1873년에 그는 메셰르스키 공작이 창간한 잡지 '시민'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는 이 잡지에 ‘작가 일기’라는 지면을 마련하여 시사 칼럼, 에세이, 단편소설 등을 싣기 시작했다.
1874년 봄에 그는 메셰르스키 공작과의 마찰 및 건강상의 이유로 '시민'의 편집장을 그만두었다. 6월에 그는 요양차 독일의 온천장 바트엠스에서 휴양했다. 8월에는 스타라야 루사로 돌아와서 겨울 동안 '미성년'을 집필하여, 1875년 1월부터 '조국 수기'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미성년'은 다른 대작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심지어 ‘5대 소설’에서 배제하자는 주장까지 있다. 하지만 미성년 역시 만만히 볼 작품은 아니다. '죄와 벌' 등 다른 네 편의 소설이 너무 걸작이라서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일 뿐이다.
미성년은 불륜으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불륜의 부도덕성을 심판하거나 결혼의 신성함을 사수하자고 외치는 소설이 아니라, 불륜 남녀가 낳은 사생아가 초점이다.
미성년은 귀족의 사생아인 스무 살 청년의 1인칭 회고로 전개된다. 20년 전, 젊은 지주 베르실로프는 영지의 정원사 마카르 돌고루키의 아내 소피야와 눈이 맞았다. 얼마 후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과 딸이 태어났는데, 아들 아르카디가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베르실로프는 마카르에게 돈을 주고 두 아이를 마카르의 호적에 올린 뒤 남의 손에 양육을 맡겼다. 그 후 그는 재산을 다 탕진하고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집에서 법적으로 여전히 마카르의 아내인 소피야와 살고 있다. 하루아침에 아내를 빼앗긴 마카르는 순례자가 되어 20년 동안 러시아 전역을 떠돌아다닌다.
사생아 아르카디는 방황한다. 그런데 아르카디에게 방향을 제시한 이가 마카르다. 마카르가 소피야를 찾아오면서 소피야와 베르실로프가 한자리에 모인다. 이 자리에서 마카르는 두 사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용서한다.
아르카디는 새하얀 턱수염을 기르고 멋지게 백발을 휘날리는 노인의 밝은 미소와 푸르고 반짝이는 커다란 눈을 단박에 사랑하게 된다. 아르카디를 매혹시킨 것은 마카르의 농부적 순박함이나 수수함이 아니고, 극기와 겸손과 삶에 대한 기쁨이다.
아르카디는 이런 마카르의 모습에서 그가 줄곧 찾아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가 목말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품격’이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직접 그린 마카르 초상화. 사진=김세곤 제공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1876년 1월부터 '작가 일기'를 단행본 형태의 월간 잡지로 출간했다. 이는 1인 시사 종합 월간지였는데 잡지는 1877년까지 22권 발간되었고, 1880년과 1881년에도 단권으로 1권이 나왔다.
이 잡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1876년에는 구독자가 2000명, 1877년에는 3000명이었고, 1880년은 6000부, 1881년은 무려 1만4000부나 팔렸다. (석영중 지음, 매핑 도스토옙스키, p 366-370)
1877년 '작가 일기' 잡지 표지. 사진=김세곤 제공
그는 1876년 1월 '작가일기' 창간호에 ‘손을 내미는 아이들’이란 평론을 실었다. 앵벌이로 몰린 아이들이 범죄와 선악 양심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한 범죄자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작가 일기'에서 애정 어린 마음으로 러시아의 민중에 대하여, 고통으로 단련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대하여, 순종과 참회에 대하여 써나갔다.
그는 러시아에 위대한 미래가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민들이 형제처럼 하나가 되는 ‘전 인류적인 사명’을 예언했다. 러시아 정교에서 그는 구세주의 왜곡되지 않은 참 얼굴을 발견하였고, 빛이 동방에서 비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러시아의 지식인들에게 끊임없이 민중과 하나가 되라고 호소하였다. (모출스끼 지음,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 p156-158)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저작권자 © 글로벌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내와 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8)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0) | 2020.09.15 |
---|---|
카프카와 프라하 (2) - 변신 (0) | 2020.09.14 |
북인도 여행 (3) - 델리 라지가트 ① 김세곤 (0) | 2020.08.31 |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6)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을 쓰다. (0) | 2020.08.31 |
라지가트 (델리 간디 추모공원) (0) | 2020.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