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8)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승인 2020-09-14 10:44:17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도스토예프스키는 1879년 1월부터 '러시아 통보'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연재했다. 이 소설은 그의 최후의 소설이자, 그의 사상과 종교와 철학, 그리고 인생 경험이 집약된 유언과도 같은 소설이었다.
그는 쿠즈네치니 골목 5번지 집에서 집필에 매진하여 1880년 11월에 소설을 마쳤다. 단행본으로 출간되자 책은 순식간에 팔렸고 호평을 받았다.
쿠즈네치니 5번지 집 입구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 기념관이 되었다). 사진=김세곤 제공
그는 소설 첫 페이지(題詞)에 ‘아내에게 바치는 글’을 남겼는데 ‘요한복음’을 적었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스카야에게 바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44)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첫 페이지. 사진=김세곤 제공
그러면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1860년대 러시아의 소도시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러시아어로 ‘가축시장’을 의미함)의 지주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이기와 탐욕으로 살아온 홀아비이다. 그에게는 두 번의 결혼으로 낳은 아들이 셋 있는데, 아들들은 처음부터 완전히 팽개쳐졌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색욕이 강하고 인내심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난봉꾼이고, 둘째 아들 이반은 자부심이 강하고 신중한 과학도로 무신론자이다. 심성이 고운 셋째 아들 알료사는 인근 수도원의 덕망 높은 장로 밑에서 수도사의 길을 가고 있다. 이 집의 젊은 하인은 스메르자코프인데 그는 백치 여인 리자베타의 몸에서 태어난 사생아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산다.
어느 날, 세 아들이 아버지 표도르를 찾아온다. 가장 문제는 장남 드미트리이다. 그는 아버지와 재산 문제를 담판 짓고자 왔다가 동네 늙은 상인의 첩인 그루센카에게 한눈에 반하여 약혼녀 카테리나를 버린다. 그런데 아버지 역시 그루센카에게 반해서 봉투에 3000 루블을 넣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이반은 형 심부름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된 약혼녀 카테리나를 남몰래 연모한다.
돈 문제에 쪼들린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두들겨 패면서 협박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진짜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된 채 발견되고 3000 루블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드미트리는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완강히 부인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는다. 스메르자코프가 진범이었으나 살해되던 날 간질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 않은 것이다.
'살인자 드미트리 카라마조프' 포스터. 사진=김세곤 제공
이렇게 카라마조프 가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난다. 아버지는 존속살해 당하고 장남은 유형을 간다. 차남은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3남은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살인범인 사생아는 자살한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신의 형상이 희미해져 버리고 전통적 윤리의식이 흔들리는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이반은 무신론자이고, 알료사는 신앙심이 깊다. 이런 이분법 구도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료사에 가장 주목한다.
알료사는 1878년 5월에 간질병으로 죽은 세 살배기 아들 알료사(알렉세이)의 분신이다. 당시에 그는 슬픔에 젖어 옵티나 푸스틴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장로와의 면담은 그에게 깊은 위안을 주었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는 알료사가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내용의 속편을 쓰고자 했었다. 그런데 그가 1881년 1월 말에 별세하여 속편은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속편 구상을 했을지에 대하여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 알료사는 가난한 퇴역군인의 아들 일류사의 장례식을 마친 뒤, 커다란 바위 옆에서 일류사의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다.
“여러분, 우리는 곧 헤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첫째 일류사를, 둘째 서로를 절대 잊지 않겠노라고 약속합시다. 그리고 훗날 우리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또 우리가 앞으로 이십 년 동안이나 서로 만나지 못할지라도 .. 어쨌거나 우리는 가엾은 소년을 땅에 묻었다는 사실은 기억합시다. (중략)
여러분,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선량하게 살고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그리고 절대로 서로를 잊지 맙시다. (후략) ”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3, 민음사, 2007, p 549-55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러시아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모출스끼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단테의 '신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모출스끼,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 p 157-164)
프로이트(1856∼1939)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극찬했는데, 그는 이 소설을 읽고 '부친 살해 욕망'의 모티브를 얻었고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발전시켰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인류 문학의 정점’이라고 칭송했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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