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은 누구인가?
1498년 7월1일자 ‘연산군일기’의 뒷부분을 읽어보자
이윽고 의금부 경력(義禁府 經歷) 홍사호와 도사(都事) 신극성이 명령을 받들고 경상도로 달려갔는데, 외부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를 알지 못했다.
홍사호가 신극성이 경상도로 달려간 지 열흘이 지난 7월11일에 연산군은 “김일손의 사초(史草)를 모두 대내(大內)로 들여오라.”고 전교하였다. 실록청 당상 이극돈 · 유순 · 윤효손 · 안침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사초는 임금이 스스로 보지 않습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直筆)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즉시 빠짐없이 대내로 들이라.” 하였다.(후략)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1일자)
7월11일자 연산군일기와 7월1일자 연산군일기를 연관시켜 보면, 유자광 등이 7월1일에 연산군에게 아뢴 것은 ‘김일손의 사초’와 관련된 일이었고, 홍사호와 신극성이 경상도로 달려간 것은 김일손을 압송하기 위함이었다.
당시에 김일손은 1496년(연산군 4년) 윤3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경상도 청도에 있었는데 상복을 벗자 풍질(風疾)이 있어 함양 청계정사에서 요양 중이었다.
연산군이 잡아오라고 한 누구인지 알아보자.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은 경상도 청도에서 살았는데 17세인 1480년에 밀양에 가서 김종직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고, 1486년 9월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1월에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되었고 12월에 정자 겸 춘추관 기사관이 되었다. 1487년 10월에는 노모 봉양을 위해진주목학의 교수로 부임했다가, 1489년 11월에 요동 질정관으로 중국 북경에 다녀왔고, 1490년 3월에 승정원 주서 겸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다. 이 무렵 그는 경연에 입시하여 노산군(단종)의 입후(立後 : 양자를 세우는 것)을 주청하였고, 사관에 입직하여 사초를 닦으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수록했으며,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을 감수하였다. 1490년 8월에는 홍문관 수찬이 되었고, 11월에는 진하사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왔다. 28세 때인 1491년 8월에는 병조좌랑·이조좌랑이 되었는데 10월에는 직언을 구하는 왕의 교지에 따라 소릉(문종 비이자,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의 묘)의 복위를 주청하는 소를 올렸다. 1492년에는 홍문관 부교리에 직을 두고 사가독서를 했고, 1493년 1월에는 홍문관 교리로 승진했으며, 7월에는 예문과 응교로 직을 두고 사가독서 했다. 1494년 9월에는 이조정랑 겸 시독관 춘추관 시독관에 제수되었는데 12월24일에 성종이 승하하였다.
연산군이 왕이 되자 김일손은 1495년 2월에 신병으로 사직을 주청하였으나 윤허 받지 못하고 충청도 도사로 근무하였다. 김일손은 5월28일에 시국에 관한 병폐 26개 조목을 상소하였다. 여기에는 언로 확충, 사관 확대, 소릉 복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연산군은 아무런 비답(批答)을 내리지 않았다.
김일손은 1495년 10월에 사간원 헌납(정5품)에 제수되어 수륙제 금지와 소릉 복위를 주청하였다. 수륙재는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호노가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을 말하는 데,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초에 성행했다. 조선 왕실에서는 유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관행처럼 이루어져 왔는데 연산군도 수륙재를 지내는 것을 허용하려 하자 1495년 11월에 헌납 김일손은 사간 이의무, 정언 한훈 · 정언이주등과 함께 수륙재를 반대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월30일에 헌납 김일손은 대사간 김극유, 사간 이의무, 정언 한훈· 이주와 함께 소릉의 복위를 헌의(獻議)하였다. 이는 사간원 직원 모두가 헌의한 것이었다. (연산군일기 1495년(연산1년) 12월 30일 묘제에 대하여 김극뉴 등 간원이 헌의하다)
* 김일손의 약력은 아래 문헌을 참고하였다.
o 박주, 역사정신을 구현한 사관 김일손, 한국사인물열전 1, 돌배개, 2003, p 440-456
o 탁영선생연보, 지은이 김일손 옮긴이 김학곤 조동영, 탁영선생문집, 탁영선생숭모사업회, 2012, p 68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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