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려실 기술 무오사화(3) 유자광 : 무오사화 기획자
○ 유자광은 폐주의 노여움을 이용하여 한꺼번에 모조리 잡아 죽일 계획으로 윤필상(尹弼商) 등에게 눈짓하면서, “이 사람들의 죄악은 무릇 신하된 우리로서는 한 하늘 밑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이니 마땅히 그 무리들을 찾아내어 모두 죽여 없애야만 조정이 맑고 깨끗해질 것이요,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무리들이 일어나 얼마 안 가서 다시 화란(禍亂)이 생길 것입니다.” 하니 좌우에 있는 이들이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노사신(盧思愼)은 손을 흔들며 말리기를, “무령(武靈 유자광)은 어찌 이런 말까지 하시오. 옛날 당고(黨錮의 일을 듣지 못했습니까. 금고(禁錮)의 법망(法網)이 날로 혹독하여 선비의 무리들을 용납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한(漢) 나라도 뒤따라 망했으니 청류(淸流)의 의논이 마땅히 조정에 있어야 될 것이요, 청류의 의논이 없어지는 것은 나라의 복이 아닌데 무령은 어찌 틀린 말을 하시오.” 하니,유자광은 조금 기가 꺾이었으나 범죄 사실에 관련된 사람은 남김없이 죄를 다스리고자 하였다. 노사신이 또 말리기를, “당초에 우리들이 임금께 아뢴 것은 사초의 일뿐인데, 지금은 지엽(枝葉)으로 연루되어 사초 일에 관계되지 않은 사람도 잡혀 갇힌 이가 날로 늘어나니 이것은 우리들의 본 뜻이 아니오.” 하니 유자광은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유자광전》
○ 이목(李穆)이 태학(太學)에 있던 시절 글을 올려 윤필상(尹弼商)을 간악한 귀신이라고 지목한 일이 있었고, 조순(趙舜)이 정언으로 있을 때 노사신을 논박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 와서 윤필상은 이목이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함하여 죽이고 또 노사신에게, “조순도 죽여야 될 것이오.” 하니 노사신은 “이것이 무슨 말이오?” 하고 끝내 듣지 아니하였다. 《병진정사록》
○ 죄를 결정하는 날에 노사신이 홀로 의사가 같지 않으므로 유자광은 불쾌한 기색을 나타내면서 힐난하였다.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임금께 아뢰었는데 폐주는 유자광 등의 의논을 따랐다. 이날 대낮에 캄캄해지며 비가 퍼붓고 큰 바람이 동남쪽에서 일어나 나무를 뽑고 기왓장을 날려 보내니, 성 안의 백성들이 엎어지고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유자광전》
○ 7월 27일에 난역(亂逆)한 신하를 처형했다는 사유를 종묘에 고하였으니 그 글의 대략에, “어찌 간사한 신하가 몰래 모반할 마음을 품고서 옛일에 가탁하여 문자에 드러낼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흉악한 사람들이 당을 지어 세조의 덕을 모함하고 헐뜯으니 난역부도(亂逆不道)한 죄악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하였다.사죄(赦罪)를 반포하는 글에는, “간사한 신하 김종직은 나쁜 마음을 품고 몰래 그 무리들을 모아 음흉한 계획을 시행하려고 한 지가 오래 되었다. 항적(項籍 항우)이 의제(義帝)를 죽인 일에 가탁하여 문자로 표현하여 선왕(세조)을 나무라고 헐뜯었으니 하늘에 닿을 정도로 악독한 죄를 진만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대역죄로 논단하여 관을 쪼개어 송장의 목을 베게 하노라.그 무리 김일손ㆍ권오복(權五福)ㆍ권경유(權景裕)는 간악한 덩어리로 뭉쳐서 서로 호응하고 도와 그 글(조의제문(弔義帝文))을 칭찬하기를 충분에서 나왔다고 사초에 기록하여 영원히 뒷세상에 전하고자 했으니 그 죄가 김종직과 같다. 아울러 능지처참하도록 한다. 김일손을 또 이목(李穆)ㆍ(허반(許磐)ㆍ강겸(姜謙) 등과 더불어 선왕의 일을 거짓 꾸며서 서로 전하여 말하고 사초에 썼으니 이목과 허반도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에 처하고, 강겸은 곤장 백 대를 치고 가산을 적몰하여 먼 변방에 보내어 관노를 만들게 한다.표연말(表沿沫)ㆍ홍한(洪瀚)ㆍ정여창(鄭汝昌)ㆍ무풍부정(茂豐副正) 총(摠) 등은 난언죄(亂言罪)를 범했고, 강경서(姜景敍)ㆍ이수공(李守恭)ㆍ정희량(鄭希良)ㆍ정승조(鄭承祖) 등은 난언을 알고도 고하지 아니하였으니 아울러 곤장 백 대를 치고 3천 리 밖으로 귀양 보낸다.이종준(李宗準)ㆍ최부(崔溥)ㆍ이원(李黿)ㆍ이주(李冑)ㆍ김굉필(金宏弼)ㆍ박한주(朴漢柱)ㆍ임희재(任熙載)ㆍ강백진(康伯珍)ㆍ이계맹(李繼孟)ㆍ강혼(姜渾)은 모두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만들어 서로 칭찬하고 혹은 나라의 정치를 비방하여 세상의 일을 비평했으니, 임희재는 곤장 백 대를 치고 3천 리 밖으로 귀양 보내고,이주는 곤장 백 대를 쳐서 먼 변방에 부처시키고, 그 나머지 사람은 모두 곤장 80대를 쳐서 먼 지방에 부처시키되 귀양 간 사람들은 모두 봉수(烽燧)ㆍ노간(爐干)의 역을 맡게 한다. 성중엄(成重淹)은 곤장 80대를 쳐서 부처시키고, 이의무(李宜茂)는 곤장 80대를 쳐서 도년(徒年)에 처한다. 역사를 편수하는 관원으로서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도 즉시 아뢰지 않은 어세겸(魚世謙)ㆍ이극돈(李克墩)ㆍ유순(柳洵) 윤효손(尹孝孫)ㆍ김전(金詮) 등은 관직을 파면시키고, 홍귀달(洪貴達)ㆍ조익정(趙益貞)ㆍ허침(許琛)ㆍ안침(安琛) 등은 좌천시킨다. 신하가 무장(無將)하고 이미 부도한 죄를 처단하였으니,우레 소리 섞인 비가 내림으로써 마땅히 정국이 혁신되는 은혜를 입게 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좌의정 한치형(韓致亨) 등은 나아가 경하하였다. 《이세영일기》
○ 유자광은 바라던 일을 이루었으므로 의기양양하여 집에 돌아왔다. 이후로부터 자광의 위엄이 조정과 민간에 군림하였으니 조정에서는 그를 독사처럼 대하여 감히 그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유림들은 기운이 꺾여서 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학문하는 곳은 두서너 달 동안에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고,부형들은 서로 경계하기를, “학문은 과거나 볼 만하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많이 하리오.” 하였다. 유자광은 스스로 훌륭한 계책을 얻은 듯이 꺼리는 일이 없었으니, 이익만을 탐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들이 문간에 가득 차게 되었다. 견식이 있는 이는 가만히 탄식하기를, “무술년의 옥사는 정인(正人)이 간악한 무리를 공격한 것이고, 무오년의 옥사는 간악한 무리가 정인의 무리를 죄에 빠뜨린 것이다.20년 사이에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패했으니 나라의 치란도 이에 따라 달라졌다. 대개 군자가 형벌을 쓸 적에는 항상 너그러이 시행하는 데서 실수가 생기고, 소인이 원망을 보복할 적엔 반드시 남김없이 멸망시키고야 마니, 무술년에 군자들이 그 형벌을 끝까지 시행하였더라면 어찌 오늘의 화가 있었으리오.” 하였다. 《유자광전》
○ 윤필상ㆍ노사신ㆍ한치형 등에게 각기 반당(伴倘 배종(陪從)하는 하인) 10명ㆍ노비 13명ㆍ구사(丘史) 7명ㆍ밭 100결(結)ㆍ옷의 안팎 감ㆍ구마(廐馬) 등 물건을 내려 주고 유자광 이하 사람에게는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 의금부 도사들에게는 말을 하사하였다. 《이세영일기》
○ 김종직의 죄를 추론(追論)할 때에 대간이 생전의 관작만 깎아 버리자고 청하였더니, 너무 가벼운 벌을 논했다는 이유로 모두 죄를 입었다. 《점필재문집(佔畢齋文集)》은 조위(曹偉)가 편집하고 홍석견(洪錫堅)이 전라 감사로 있을 때 간행하였는데, 조위는 연경(燕京)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홍석견은 유자광이 구원하여 중한 형벌을 면하게 되었으니,함양(咸陽) 사람들이 김종직의 사우(祠宇)를 세우고자 할 때 홍석견이 “이것은 그의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 고을에서 공적으로 의논할 일은 아니다.” 고 하였으므로 이때에 유자광은 이 일을 들어 홍석견을 구원하였다. 《이세영일기》
[주D-001]사대(四大) :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있는 말인데, 도(道)ㆍ천(天)ㆍ지(地)ㆍ왕(王)의 네 가지가 크다는 것이다.
[주D-002]오상(五常) :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주D-003]6국(國) : 전국시대(戰國時代)의 한(韓)ㆍ위(魏)ㆍ조(趙)ㆍ제(齊)ㆍ초(楚)ㆍ연(燕)의 여섯 나라를 말하는데, 모두 진(秦)에게 멸망 당하였다.
[주D-004]진승(陳勝) : 진(秦)의 2세 황제 때에 처음으로 반란을 일으킨 사람.
[주D-005]건부(乾符) : 왕위를 말한 것이다.
[주D-006]당고(黨錮) : 동한(東漢) 말년에 간신들이 천하의 명사(名士)를 명당(明黨)이란 죄명으로 일망타진하여 금고시킨 것을 말하는데, 금고라는 것은 다시 벼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주D-007]봉수(烽燧)ㆍ노간(爐干)의 역 : 산 위의 봉화를 관리하고 관청의 횃불을 맡은 천역.
[주D-008]신하가 무장(無將)하고 : “신하는 장(將)함이 없어야 하는데 장하면 반드시 베인다.[人臣無將 將則必誅]”는 말이 《춘추전(春秋傳)》에 있는데, 여기서 장은 장차 임금을 어떻게 하려 한다는 뜻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석초 이재호 (공역)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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