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양 소쇄원 제월당 마루에 앉았다. 모처럼 가족 모임이다. 갑자기 여동생이 물었다. “저 마루에 걸려있는 편액들은 무엇이요?”
필자의 답변은 간단했다.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 “그렇지. 온통 한자이니 어찌 알까. 설명도 없으니.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게 바람이나 쐬자.” #2. 명색이 역사기행작가인데 그냥 있기 민망하여 편액들을 설명했다.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는 기다란 현판은 하서 김인후(1510-1560)의 소쇄원 48영이야. 그 오른편에는 면앙정 송순, 송천 양응정, 고봉 기대승의 시가 적혀 있어. 이 시들은 소쇄처사 양산보가 1557년에 제월당 안방에서 별세했을 때 지은 만시(輓詩)야. 바로 우측은 석천 임억령의 시가 적힌 현판, 그 옆은 하서 김인후와 양산보의 시가 적힌 현판이야. 그리고 소쇄원 48영 편액 왼편에는 고경명, 김성원, 정철의 시가 적혀 있어.
이 현판에 걸린 시들은 소쇄원과 관련된 것인데 온통 한자라서 내용은 나도 해석하기 어려워”
#3. 이윽고 하서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48영’(현판에는 ‘방양형언진임정 訪梁兄彦鎭林亭, 48영 하서 김후지’라고 적혀 있다)에 대하여 추가로 설명했다.
“소쇄원 48영은 소쇄원의 완성을 표현한 시야. 양산보는 1534년부터 소쇄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1548년에 완성되었지. 이 때 하서는 ‘소쇄원 48영’시를 지었지.
한편 정자의 경치는 10영, 20영, 30영으로 읊는 것이 보통인데 소쇄원 48영은 매우 독특해. 예전에 안평대군(1418-1453)이 ‘비해당(匪懈堂) 48영’을 지은 적이 있지. 48이란 8괘와 6효를 곱한 것인데, 이는 우주 만상의 변화와 상생의 이치를 알 수 있는 숫자야.
소쇄원 48영은 제1영 소정빙란(소정 난간에 기대어)부터 시작하여 제48영 장단제영(긴 담에 걸려 있는 노래)까지 인데, 옛날에는 소쇄원 담벼락에 48영이 병풍 두르듯 붙여져 있었데.”
#3. 이어서 양산보와 편액에 적힌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양산보의 어머니는 송씨인데 송순의 친고모야. 양산보는 김인후와 사돈 간이고. 양산보 둘째 아들 양자징과 김인후 둘째 딸이 결혼했지. 양응정은 같은 집안 학포 양팽손의 아들이지, 양팽손은 양산보가 조광조 밑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했지.
양산보 부인은 광산 김씨인데 오빠가 환벽당 주인 김윤제(1501-1572)야. 김윤제는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할아버지 뻘이고, 외손녀 유씨와 송강 정철 결혼시킨 장본인이야. 석천 임억령은 김성원의 장인이고, 고경명도 김성원과 먼 친척이야. 한편 김윤제는 나주목사였을 때 기대승이 지은 <주자문록>를 발간했어. 이렇게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지.”
#4. 수원 집으로 돌아와서 제월당에 걸린 ‘소쇄옹 제영시’의 출처를 찾았다. 그랬더니 이 시가 <소쇄원 시선(詩選)> 아닌 <국역 면앙집>에 있다. ‘면앙정 차운 시’가 그것이다.
단구(丹丘)를 찾기 어렵다고 무엇이 아쉬워 참으로 좋은 경치 이곳이 분명하다. 널찍한 건곤은 너그럽게 포용하고 바라보니 산수는 질펀하기만 해 풍상이 몇 해던가, 솔과 대 늙었고 시주(詩酒) 즐긴 당년엔 벼룻물도 말랐을 거야 난간에 기대어 눈동자를 돌려보니 세상과 인연하는 소식이 끊겼구나.
#5. 식영정 · 서하당 · 면앙정 · 관수정 등을 가보아도 다 마찬가지인 것은 정자에 걸려 있는 편액에 설명문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답사객은 편액을 그냥 휙 보고 만다. 더구나 편액은 한자(漢字)이니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고 정자에 설명문을 주렁주렁 달아 놓을 수도 없으니 해결책은 없을까?
해결책은 있다. 지방자치단체 인터넷 홈페이지에 편액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 놓으면 된다. 더 좋은 것은 유튜브에 문화유산 해설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면 정자에 앉아서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으리라. 문화유산도 이제는 IT와 접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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