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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퇴계 생각, 하서 생각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퇴계 생각, 하서 생각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퇴계 생각책을 다시 읽었다. 2014년에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서원의 유네스코 문화유산등재 관련 국제세미나에 참석하여 얻은 책인데, 6월 중순 광주문화재단이 주최한 광주학 콜로키움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강의를 준비하면서 또 읽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교양총서로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첫 번째 책이 2012년에 발간된 일상적 삶에서의 퇴계 이황을 그린 퇴계처럼이고, 두 번째 책이 2013년에 발간된 퇴계와 호남 선비들의 격의 없는 만남과 깊은 사귐을 조명한 퇴계생각이다.

 

퇴계 생각책에 나오는 퇴계 이황(1501-1570)과 만난 호남선비들은 세 부류이다. 첫째는 벗으로서 사귄 인물이다. 하서 김인후(1510-1560) · 금호 임형수(1514-1547) · 면앙정 송순(1493-1582) · 석천 임억령(1496-1568) · 칠계 김언거 (1503-1584)가 그들이다.

 

둘째는 퇴계의 제자들이다. 1566년에 안동대도호부사를 한 해남 출신 행당 윤복(1512-1577)은 퇴계를 만난 후에 그의 세 아들 윤강중 · 흠증 · 단중과 외조카 문위세(1534-1600)를 퇴계에게 보내어 수학하게 했다. 이 때 문위세의 매부 죽천 박광전(1526-1597)도 같이 공부했는데 퇴계는 귀향하는 죽천에게 주자서절요를 선물하고 이별시 5수를 써 주었다.

 

또한 효령대군 후손 이함형(1550-1586)도 퇴계의 제자이다. 그는 처가인 순천에 살았는데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다. 1570년에 퇴계는 이함형에게 원만한 부부관계를 충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당시에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셋째는 직접 문하에서 배운 제자는 아니나 이황을 스승의 예로 모신 인물이다. 고봉 기대승과 사암 박순이 그들이다.

고맙다. 퇴계 이황과 호남 선비들의 만남을 소개해 주었으니. 16세기의 호남선비들의 행적을 소상히 알게 해 주었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영남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이런 책을 기획했다니. 퇴계가 주연(主演)이고 호남의 선비는 조연(助演)으로 출연한 책을 보고 있으니.

 

그러면 호남 선비가 주연이고 타 지역의 선비가 조연인 책은 없나?

영남에 퇴계가 있다면 호남에는 하서가 있는데, <하서 생각> 책은 어째서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백승종 교수가 2003년에 지은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책을 다시 읽었다. 여기에는 하서가 사귄 벗들이 여럿 나오는데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이 눈에 들어온다. 서경덕과의 만남은 성균관이었는데 화담은 하서에게 박연폭포에서 지은 시의 화운시를 지어 달라고 했다.

 

하서와 퇴계의 첫 만남은 1533년 성균관에서였다. 하서는 자기보다 9살이나 나이 많은 퇴계를 퇴숙(退叔)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퇴계와 첫 만남을 시로 적어놓았다.

 

두 번이나 술병 들고 찾아와

난간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오.

차가운 구름이 해를 가렸고

싸락눈도 내렸다오.

천년의 고마운 정 서로 웃고 담소했네.

 

한편 하서는 동문수학한 친구와도 가까웠다. 박상 밑에서 공부한 친구는 임형수였고, 최산두 밑의 동문은 유희춘 · 나세찬 · 채중길 · 윤사율이었다.

 

비록 동문수학한 처지는 아니라도 뜻이 잘 맞는 친구도 있었는데 백광홍(1522-1556)이 그런 경우였다. 백광홍은 하서 보다 12살이나 어렸고 사돈인 일재 이항(1499-1576)의 제자였지만, 늘 친구처럼 지냈다. 백광홍은 하서의 순창 우거지를 찾아오기도 했고, 하서는 1555년에 관서평사로 가는 백광홍에게 전별시를 쓰기도 했다. 기행가사의 효시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은 백광홍은 안타깝게도 병이 들어 35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다.

 

<퇴계생각>처럼 <하서생각> 책을 발간하였으면 한다. 만남은 맛남이다. 더구나 정겨운 시와 편지로 남긴 만남은 더욱 감칠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