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과 무오사화(4)
김일손이 함양에서 서울로 압송되었을 때, 김일손 사초에 관한 것임을 미리 알았다.
그것도 이극돈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았다. 실록에 나온다.
(4)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2일 병오 4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홍사호 등에게 명하여 김일손이 도중에 말한 것을 빠짐없이 서계하게 하다
왕이 홍사호(洪士灝) 등에게 명하여 김일손(金馹孫)이 도중에서 말한 것은 낱낱이 서계(書啓)하게 하니, 사호 등이 서계하기를,
"신 등이 처음 일손을 구속할 적에 일손의 말이 ‘이는 필시 《실록(實錄)》에 대한 일일 것이다.’ 하므로, 신 등이 ‘어째서 그렇다고 하느냐?’ 한즉 일손은 ‘나의 사초(史草)에, 이극돈(李克墩)이 세조조에 불경(佛經)을 잘 외운 것으로 벼슬을 얻어 전라도(全羅道) 관찰사(觀察使)가 된 것과,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상(喪)을 당하여 장흥(長興)의 관기(官妓) 등을 가까이한 일을 기록하였는데, 듣건대 극돈이 이 조항을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감히 못했다고 한다. 《실록》이 빨리 편찬되지 못하는 것도 필시 내가 상에 관계되는 일을 많이 기록해서라고 핑계대고 비어(飛語)를 날조하여 상께 아뢰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지금 내가 잡혀가는 것이 과연 사초(史草)에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큰 옥(獄)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극돈의 아들 이세전(李世銓)이 이웃 고을의 수령이 되어 왔는데, 가형(家兄)에게는 문안을 하면서도 나에게는 오지 않으면서 다만 「이 사람이 병을 얻었다는데 아직 죽지 않았소.」 하였다 하니, 극돈이 나를 원망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16 면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王命洪士灝等, 書啓馹孫途中所言, 士灝等書啓曰:
臣等初收馹孫, 馹孫曰: "是必《實錄》事也。" 臣等問: "何以云然?" 馹孫曰: "吾史草, 記李克墩當世祖朝, 誦佛經得官, 觀察全羅道, 遭貞熹王后喪, 嬖長興官妓等事。 聞, 克墩欲削此事, 而猶不敢。 未得速撰《實錄》, 是必諉我多記屬上之事, 造飛語上聞, 以及於此也。 今我被收, 果由史事, 必起大獄矣。 克墩子世銓爲隣邑守令, 存問家兄, 而不及我, 且曰 ‘此人得病, 今尙不死耶?’ 克墩之怨我明矣。"
【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16 면
【분류】역사-편사(編史)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사초 삭제와 관련하여 이극돈과 김일손은 만난 적이 없다. 듣건데 라는 말이 증거이다. 당시에 김일손은 모친상으로 1596년 2월부터 청도에 있었다. 이극돈이 김일손 사초를 본 것은 그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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