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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장개석은 왜 모택동에게 졌나?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원장의 남도일보 칼럼장개석은 왜 모택동에게 졌나?

오치남 기자  |  oc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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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6  13: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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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은 왜 모택동에게 졌나?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49년 10월 1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모택동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12월 10일 장개석은 대만으로 패주했다. 4년여의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이겼다.
장개석은 왜 모택동에게 졌나? 민심을 잃었고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중국을 놓고 패권 다툼을 벌였다. 10월에 양측은 협정을 맺고 내전을 피하고자하는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국민당은 이를 파기하고 공산당 해방구를 공격하였다.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의 마셜 장군이 중재하여 1946년 1월 10일에 정전 협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는 효과가 없었다.

1946년 6월 국민당은 전면적인 내전을 개시하였다. 내전 초기에는 국민당이 절대 우세했다. 국민당 군대는 430만 명으로 공산당 군대 128만 명에 비하여 월등했다. 더구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 군대는 장비, 보급 등 모든 면에서 공산당 군대보다 우세하여 내전은 곧 종식될 듯이 보였다. 특히 국민당은 1947년 3월에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을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당의 승리는 내전 시작 후 1년 정도가 전부였다. 국민당은 도시만 집중적으로 점령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게다가 인플레로 인한 경제 붕괴, 세금 가중과 관리들의 총체적 부패로 민심이 돌아섰다.

반면에 모택동은 공산혁명의 동력으로 농민에 주목하였고 이들에게 공산당의 사활을 걸었다. 공산당은 1947년에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인구의 10%인 지주와 부농이 토지의 70∼80%를 차지하던 것을 몰수하여 농민이 토지를 소유케 하였다. 무려 1억 명의 농민이 혜택을 보았다. 이러자 농민들은 공산당 군대에 자원 입대하였다. 반면에 국민당이 통치하는 농촌지역은 개혁은커녕 오히려 농민들에게 세금을 더 가중시켰다.
 

국민당은 전쟁비용을 조달하고자 화폐를 마구 찍어냈다. 그 후유증으로 물가는 매월 30%씩 살인적으로 올라 국민들은 생존을 위협받았다. 1947년 9월 베이징 대학 총장은 일기에서 “대학 교수들도 모두 먹는 이야기만 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더구나 국민당 관리들은 닥치는 대로 재산을 빼앗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물욕·색욕·관직욕에 빠져 국민은 아랑곳 없었다. 당시에 이런 동요가 유행했다. “기다리던 장 총통이 왔는데 음식값만 오르네” “기대했던 국민당 관리가 왔는데 오히려 재앙이네”

국민들은 국민당에 대한 신뢰를 접었고, 차라리 공산당이 통치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농민은 물론이고 지식인과 학생, 소상인·수공업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국민당 반대운동의 제2전선을 형성했다. 모택동의 말대로 ‘장개석의 국민당은 중국인들에게 포위당한 것’이다.

1947년 하반기부터 국민당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성탄절 이후에 임표의 공산당은 국민당 정예부대 15만 명을 죽였다. 1948년부터 내전은 공산당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948년 가을 임표의 공산당 군대는 만주에서 국민당 군인 47만 명을 죽였다. 국민당 군대는 급속히 붕괴되었다.

공산당은 1949년 1월 31일 베이징에 입성하였고, 4월 23일에는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을 함락시키고, 5월 27일에 상해까지 손에 넣었다.
10월 1일에 중화인민정부가 탄생하였고, 공산당은 11월 30일에 중화민국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중경마저 함락시켰다. 12월 10일 국민당 정부는 대륙 최후 거점인 성도에서 대만으로 도망갔다.

공산당의 승리는 병력 규모의 변화에서도 나타났다. 1949년 6월에는 공산당 군대가 400만 명, 국민당 군대가 150만 명으로 공산당 군대가 압도적이었다.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옛말이 있다. “부패는 국가 멸망의 지름길이다”란 말도 있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두 가지 교훈을 무시하여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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