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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국난을 극복한 올곧은 정승, 오성부원군 이항복 (2)

 

국난을 극복한 올곧은 정승, 오성부원군 이항복 (2)

 

1592년 말에 이덕형은 명나라로 가서 원병에 성공하여 이여송이 이끄는 5만 명의 명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왔다. 1월초에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이윽고 승전 축하 연회가 열렸다. 이 연회에 이항복은 병조판서로, 이덕형은 접반사로 참석했다. 연회 도중에 이여송은 이덕형이 이산해의 사위라는 것을 알고는 의아해 하며 한 마디 하였다. “조선은 사대부끼리 동성혼인을 합니까? 이는 오랑캐들이나 하는 일 아닌가요?”

 

은연중에 조선을 깔보는 발언이었다. 순간 조선 대신들은 당황하였다. 본이 다르면 성이 같아도 혼인할 수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하였다. 그 때 이항복이 나섰다. “이덕형은 원래 성이 계()씨로 계덕형입니다. 그래서 이산해의 사위가 된 것입니다. 헌데 계덕형의 공이 많아 임금님이 성을 하사하시어 그때부터 이덕형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여송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졸지에 계덕형(잘못 발음하면 개덕형이 된다?)이 된 이덕형은 이항복을 짐짓 흘겨보았고, 이항복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이항복은 해학과 기지가 넘쳤다. 반면에 이덕형은 차분하고 진중하였다 한다. 한음 이덕형이 외동아들인데 반하여 오성 이항복이 넷째 아들이고 어려서 골목대장을 하였던 점도 고려할 만하다.

 

이항복은 1595년에 이조판서에 올랐다가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병조판서를 맡아 전란을 지휘하는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