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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남도일보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칼럼-‘명량: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오치남 기자  |  oc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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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13  17: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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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명량 :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목포 시사회에 참석했다. 김한민 감독의 인사말에 이어 95분간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1,700만 흥행돌풍을 일으킨 ‘명량’의 프리퀄(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었다.

“명량해전, 과연 승리한 전쟁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김한민 감독과 ‘명량’의 배우 3명은 명량해전이 있기 직전 이순신 장군의 수군 재건로를 걸었다.
16일간의 여정은 1597년 8월3일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겸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지를 받은 손경례의 집에서부터 출발하여 12척의 배가 정박한 장흥 회령포까지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맴돈 것은 ‘기억(memory)’이라는 단어였다.
영화 첫 머리에 일본인 2명의 인터뷰가 나온다. “명량해전, 과연 승리한 전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억’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은 명량해전을 일본 수군의 승리로 본다.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과 싸우고 난 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멀리 철수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이 제해권을 장악했단다. 이는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핵심이 빠졌다. 일본수군은 명량해전의 패배로 인해 서해 진출이 좌절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일본은 군신(軍神) 이순신이 너무 두려웠다.

아울러 피해자인 한국인과 가해자인 일본인 간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에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전쟁 명칭부터 확연히 다르다.

한국은 보통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임진년에 왜구들이 쳐들어와 일으킨 난동’이란 의미이다. 이는 평화로운 조선을 침범하여 막심한 고통과 피해를 끼친 일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이 드러나는 용어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임진조국전쟁’이라 부른다.

일본은 이 전쟁을 ‘문록·경장의 역(役)’이라 부른다. 문록과 경장은 일본 천황의 연호이고 역은 전쟁을 뜻한다. 이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라 하였다. 정벌에는 조선이 무엇인가 잘못했기에 손봐주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더구나 오사카성 천수각에는 임진왜란을 영문으로 ‘Korean Campaign’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쟁이 무슨 운동인가?

한편 역사는 ‘기억하기’이다. 답사팀은 이순신 수군재건로를 걸으면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 낸다. 구례 석주관에서 정유재란 초기 초토화된 전라도 땅에서 유일하게 왜군과 분연히 싸웠던 구례의 의병과 화엄사의 스님들을 추모하고, 불탄 화엄사를 기억한다.

보성 조양창에서 청야책으로 군량미를 모을 수 없었던 이순신 장군이 군량을 확보하였음을 확인한다.
보성 열선루가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 임금의 명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 비록 전선은 적지만 보잘 것 없는 신이 죽지 않는 한 적(賊)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란 그 유명한 장계를 올린 곳임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역사 현장 보존 상태가 너무나 열악하고, 안내판 하나 없는 곳도 있다는 점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길과 수군재건길에 구례에서 머문 것을 기리는 손인필 비각은 주변이 너무 허술하고, 보성 조양창과 열선루에는 안내판 하나 없다. 그러기에 답사팀이 역사 현장마다 설치한 ‘명량·필사즉생 필생즉사’ 나무 판이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의 끝 부분은 진도 씻김굿으로 장식한다. 내레이터의 ‘살아 있는 자는 기억하는 것으로 빚을 갚을 뿐이다’라는 말이 울림을 준다.
‘명량:회오리 바다를 향하여’는 역사 대중화, 특히 청소년의 역사관 확립에 도움을 주는 영화이다. 정유재란 초기의 전쟁 상황, 즉 칠천량 해전과 남원성 함락, 직산 전투와 이순신 수군 재건을 알 수 있다. 무릇 호남인이라면 한 번 볼만하다.
<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