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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기고- 일목문장 (一目文章) 노사 기정진, 무등일보 5.7,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기고- 일목문장 (一目文章) 노사 기정진
입력시간 : 2015. 05.07. 00:0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장성군 진원면에 있는 고산서원을 찾았다. 조선 성리학 6대가중 한 사람인 호남의 거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을 기리는 제향에 참석했다. 고산사 사당에는 기정진 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김석구·정재규 등 제자 8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런데 사당에는 노사 선생 신위만 있을 뿐 영정이 없다. 이순신, 이율곡, 정약용 등은 영정이 있는데, 근대인물이면서 왜 영정이 없을까?

그 사연은 이렇다. 노사 선생이 60세를 넘자 문인 오상봉이 초상화를 그리고자 청하자 노사는 얼굴이 추하니 사양하겠노라고 하였다. 그 뒤 김석구 등 제자들이 초상을 후세에 전하기를 청하였으나 노사는 극구 사양하며, “주검은 기 氣와 함께 소멸하는 데 무엇 때문에 다시 모습을 세상에 남길 것인가”하였다. 유리론자 唯理論者답게 이귀기천 理貴氣賤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노사 선생은 키가 7척이고 상체가 하체보다 길었으며 귀는 크고 입은 모지며 눈썹은 길고 눈은 투명하였다. 그런데 그는 외눈박이였다. 6세 때 천연두를 앓아 왼쪽 눈을 실명하였다. 이러함에도 그는 “장안만목(長安萬目)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 一目)”이란 말이 생기게 한 장본인이었다.

청나라 사신이 조선에 왔다. 그는 조선에 인물이 있는지를 알고자 천자의 명 命이라며 괴상한 문제를 냈다. “동해유어 무두무미무척(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용단호장 (龍短虎長) 화원서방(畵圓書方)? (동해에 고기(魚)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척추뼈도 없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면 모가 난다. 이것이 무엇이냐?)

조정에서 문제를 못 풀어 노심초사 하고 있을 때 한 신하가 임금에게 아뢰기를 “장성에 신동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아이에게 물어 보면 어떠할 까요?”하였다. 급기야 관원을 장성에 급파하여 어린 기정진을 찾았다. 문제를 읽어보고서, 기정진은 “고기 어(魚)자에서 머리와 꼬리를 빼면 밭 전(田)자만 남고, 다시 척추 뼈에 해당하는 획 'ㅣ'를 다시 없애면 일(日)자만 남게 됩니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는 십간에 용은 진(辰)이요 호랑이는 인(寅)인데, 해가 동쪽 진방에서 뜰 때는 겨울이라 해가 짧고, 인방에서 뜰 때는 여름철이라 해가 길다는 뜻으로, 해의 일조 장단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면 모가 나는 것(日)’은 바로 해(日)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기정진의 이러한 문자 풀이에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모두 크게 감탄하면서, '장안만목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不如長城一目)' 즉 '장안(서울)의 수많은 눈이 장성의 한 눈만 못하다'라는 말로 신동 기정진을 극구 칭찬했다고 한다.

그런데 버전이 또 하나 있다. 청나라 사신이 조선 조정에 시 한 구절을 보내 대구(對句)를 청하였다. '용단호장 오경루하석양홍(龍短虎長 五更樓下夕陽紅)'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루 아래에 석양은 붉네.)

조선의 관리들이 머리를 맞대도 대구(對句)를 짓지 못했는데, 기정진은 “화원서방 구월산중춘초록(畵圓書方 九月山中春草綠)‘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면 모가 난다. 구월 산중에 봄풀이 푸르다)라고 대구하였다.

중국은 오경루에 지는 석양이지만, 조선은 구월산에 새로 돋아나는 봄풀로 표현한 것이다.

이후 노사 기정진은 ‘일목문장(一目文章)’으로 불렸고,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이 나중에 ‘문불여장성 (文不如長城)’이 되었다.

노사 기정진은 학문만 하지 않았다. 1862년에 삼정이 문란하고 삼남지방에 임술민란이 일어났을 때 ‘임술의책’을 지었고,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병인소’를 지어 올려 위정척사를 외쳤다. 그의 손자 기우만과 종손 기삼연도 한말 의병장이었다.

이제 고산서원이 주말에 개방되었다. 호남의 거유 기정진을 만나러 한번 쯤 답사하시라.


무등일보 zmd@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