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제9권 원문이미지
인사문(人事門)
김일손만시(金馹孫挽詩)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하나의 문사(文士)일 뿐이다. 세조조(世祖朝)에 급제(及第)하여, 후에 벼슬이 육경(六卿)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조의제문(吊義帝文)을 보면 분명히 우의(寓意)한 작품이었으니 이 무슨 도리란 말인가? 그 문도(門徒) 김일손(金馹孫)이 이 글을 사초(史草)에 실음으로써 화가 일어났으니, 폐왕(廢王)의 정사는 진실로 혼암(昏暗)하고 난폭했거니와, 일이 이미 드러난 이상 무사히 넘어갈 도리가 있었겠는가? 남곤(南袞)이 김일손의 천장(遷葬)에 대하여 만시(挽詩)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붓대 쥐고 듣는 대로 쓰는 것이 / 執筆書所聞
역사가의 떳떳한 규정이라네 / 史家之常規
다만 복중에 칼이 들어서 / 只是腹中劒
구태여 터럭 속의 흠을 찾누나 / 强覓毛底疵
어찌 저 원위 사람 비하려는가 / 豈比元魏人
악을 들어 길거리에 벌여 놓는 걸 / 列惡張道逵
관에 당하면 기휘 못할 일이 있으니 / 當官有不諱
그 죄는 매를 맞아 마땅하겠지 / 厥罪固當笞
라 하였다. 그 말이 또한 너무 날카롭고 꺼리지 아니함이 이와 같은데도 죄망(罪網)에 걸리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하겠다.
[주D-001]복중(腹中)에 칼이 들어서 : 겉으로 달콤한 말을 하나 속에는 칼날 같은 속셈이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
[주D-002]원위 사람[元魏人] : 원위(元魏)의 효문제(孝文帝)를 말함. 효문제는 항상 종용히 사관(史官)에게 이르기를 “시사(時事)를 바로 쓰고 국악(國惡)을 숨기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魏書 卷47》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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