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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순신 리더십'에 주목할 때 명량대첩에서 터전을 지키기 위해 낫과 괭이를 들고 나섰던 '호남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한 이가 있다. 여수 출신으로 호남향토사학자로 활동 중인 김세곤 씨는 2011년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을 펴낸데 이어 이번엔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을 발간하며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호남사람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저자는 지난 5년간 임진왜란 '시간여행'과 '공간여행'를 통해 역사 기록 속에서 임진왜란 동안의 호남사람들의 행적을 찾아냈고, 국내외 현장 답사를 통해 역사기록을 확인했다. 정유재란 때 호남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인적ㆍ물적 피해 모두 극심하던 시기였다. 남원에서 1만명이 넘게 학살당한 만인의총, 진원과 영광에서 베어간 1만40개의 코 증명서, 그리고 일본에 끌려간 포로들은 정유재란의 참혹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극심한 피해 속에서도 호남사람들은 이순신을 도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구례와 장성ㆍ남원ㆍ순천 등지에서 의병들이 다시 일어났다. 이순신이 1593년 7월16일 친구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쓰여져 있다.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다'는 이 말은 오늘날 호남정신의 근간이 되었고, 호남사람들은 국난에 처할 때 마다 이 말을 되새기며 힘을 모았다.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명량대첩기념공원에 가면 명량대첩의 격전지인 울돌목이 한 눈에 보인다. 공원에는 명량해전을 재현한 조각상들이 산책로 군데군데 전시돼 있다. '울돌목 의병항쟁(2)' 조각상의 해설에는 "임진ㆍ정유년에 왜적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니 이 지역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의병으로 참전했다. 조응량 부자와 양응지 숙질도 이 지역 백성들과 함께 의병으로 참전해 명량해전에서 낫과 괭이 등 연장으로 적을 무찌르다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전사하니 보는 이들이 모두 슬퍼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이 조각상에 새겨진 이들뿐만 아니라 명량대첩 때 참전했다가 전사한 백성들은 무수히 많다. 이처럼 호남의 민초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보훈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터전을 지킨 것이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은, 이순신의 리더십 외에도 전라도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정신 때문은 아니었을까. 박수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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