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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남이여!

월봉서원이 뜨고 있다 남도일보 글 , 김세곤

(김세곤 칼럼)   남도일보   2014.7.9

월봉서원이 뜨고 있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월봉서원 이 뜨고 있다. 지난 6월12일에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월봉서원을 방문하였다. 나청장은 “월봉서원은 다른 지역의 향교 · 서원 활용 사업과 달리 유치원부터 성인까지 쉽고 재미있게 참여하고 배우는 세대별 맞춤형 프로그램이 독특하다”고 극찬하였다.

6월13일 밤에는 월봉서원 빙월당(氷月堂)에서 '여유(旅儒)로운 음악회'가 열렸다. 달빛에서 펼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이스, 소프라노 가수의 무대는 황홀하였다.

6월27일 밤에 ‘살롱 드 월봉’ 모임에 초대되어 월봉서원을 찾았다. 이 모임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인문교류마당이다.

먼저 청년 예술가의 공연이 있었다. 생소한 악기 우쿠렐레 연주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40여명의 관객들이 환호하였고 앙코르가 두 번이나 이어졌다.

다음은 필자의 강의였다. 노래에 취하였던지 감성 이야기부터 꺼냈다. 6월26일에 장성군 장성아카데미에서 들은 문순태 소설가의 ‘감성으로 살아가기’를 소개하였다. 문 소설가가 커피에 취하여 강릉까지 다닌 것도 전언하였다.

이어서 감성의 원조는 고봉 기대승(1527-1572)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퇴계는 인간의 이성적 理性的 측면을 강조하였지만, 고봉은 이성과 감성이 혼재되어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1636년에 일본에 간 조선통신사 김세렴과 대학두 大學頭 하야시 라잔의 필담을 소개하였다. 하야시는 조선의 성리학 논쟁에 대하여 이해가 깊었고, 퇴계와 고봉의 이기논쟁에 대하여는 고봉의 주장이 옳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퇴계 숭배자 하야시가 이런 논평을 한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강의는 밤9시에 끝났다. 그런데 모임은 끝날 줄 몰랐다. 밤 10시까지 환담이 계속되었다.

월봉서원은 가히 성공적이다. 이런 성공에는 세 가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먼저 개방화이다. 2009년에 기씨문중은 중대 결단을 하여 서원을 개방하였다. 문중에서 관리하는 서원은 훼손이나 도난 때문에 문을 잠그는 것이 보통인데 과감히 서원을 연 것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서원을 찾았다. 광산구청도 주말에 일당 4만원을 주면서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하였다.

월봉서원의 수범사례는 다른 서원에도 전염되었다. 최부를 모시는 무양서원도 주말에 문을 열었다. 서원이 열린 공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둘째는 행정관청의 지원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은 월봉서원에 대하여 상당한 투자를 하였다. 철학자의 길을 만들고 체험교육관과 기숙사도 지었다. 고봉기념관도 만들어졌다.

셋째는 협업이다. 광산구청과 기씨문중, 교육문화공동체 ‘결’, 상상창작소 ‘봄’, 문화기획사 ‘라우’, 광산구문화유산해설사회 등이 협업하여 문화재청 예산을 딴 것이다. 이 예산을 4년 이상 지원받아 서원 문화프로그램 운영 노하우도 쌓였다.

2104년에도 월봉서원은 문화재청의 ‘살아 숨 쉬는 향교 · 서원 활용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되어 ‘살롱 드 월봉’, ‘꼬마철학자 상상학교’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장기적 · 지속적 발전을 모색하여야 한다. 2027년은 고봉 선생 탄생 500년이다. 지금부터 13년 후를 겨냥하여 장기 플랜을 짜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고봉(학) 연구소’이다. 부산대학교 점필재 연구소, 경상대학교 남명학 연구소처럼 지역 대학과 연계하여야 한다.

‘고봉 기대승 학교’를 상시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안동의 사단법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그 모델이다.

아울러 고봉학 알리기 대중화와 함께, <고사모 (고봉을 사랑하는 모임)>도 만들어졌으면 한다. 고사모가 1년에 한번 정도는 전국 각지의 고봉 유적 답사를 하면 좋겠다.

2015년에 도산서원, 필암서원 등 전국 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되면 서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월봉서원도 미리 준비하자. 내년에는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