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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겸 효자인 송흠

장성군의 청렴문화체험교육 , 김세곤 글 강원도민일보 도민시론

장성군의 청렴문화체험교육

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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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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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전 한국폴리텍대 강릉캠퍼스 학장

전라남도 장성군이 청렴 코드로 대박이다. 홍길동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더니 이번에는 청백리로 창의혁신하고 있다. 장성군은 2011년 9월에 역사와 교육, 관광과 힐링을 융합한 ‘청렴문화체험교육’상품을 출시하였다.

프로그램은 필암서원에서 청렴특강, 청백리 송흠과 박수량 유적지 답사, 청백 한옥에서 하룻밤 자기, 편백나무축령산 길 걷기로 꾸며져 있다. 지금까지 원주지방국토관리청, 포항시, 거창군, 한국농어촌공사, 제주시 탐라교육원, 충남금산교육지원청 등 전국 151개 공공기관에서 2만2502명이 청렴문화체험을 하였고, 중앙공무원 교육원·지방행정연수원 교육생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수익만 해도 10억 원이 넘었다.

송흠은 중종 시절에 일곱 번이나 청백리가 되었다. 그는 삼마태수라 불리었다. 지방관이 부임이나 이임할 때는 말 일곱 마리를 타고 가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본인과 어머니 그리고 아내가 타는 말 세 마리만 가지고 다녔다. 이 일화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나온다.

이러한 송흠도 공직생활 초기에는 강직한 선비 최부에게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성종 말년에 최부와 송흠은 홍문관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최부는 응교(정4품)였고 송흠은 정자(정9품)이었다. 한 번은 두 사람이 같이 휴가를 갔는데 송흠이 나주에 있는 최부를 찾아왔다. 점심을 먹다가 최부는 느닷없이 송흠에게 무슨 말(馬)을 타고 왔느냐고 물었다. 송흠은 아무 말을 못하였다. 최부는 역마는 서울에서 고향집에 올 때까지만 타는 것인데 어찌 개인 용무로 쓰느냐고 질책하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최부의 꾸중에 송흠은 몹시 당황하였다. 그는 돌아갈 때는 역마를 끌고 갔다고 한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파직된 송흠은 최부에게 정중히 사과하였다. 최부는 “자네는 아직 나이가 젊네.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일세”라며 타일렀다.



송흠의 호는 지지당(知止堂)이다. 멈춤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만족함을 알면 (知足)욕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知止 )위태롭지 않나니

그래야 오래 갈 수 있다

(노자 <도덕경> 제44장)



박수량은 감사원에서 선정한 조선 3대 청백리 중 한 사람으로 , 백비(白碑)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선비이다. 그는 별세 시 가족이 상여를 메고 고향에 갈 돈 조차 없어 명종임금이 장례비를 지원하여 준 청빈한 선비였다.

그의 청백수절함은 강릉 경포대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거울 면(鏡面)인양 평평하고 수심은 깊은데

단지 사람 모습만 비추고 사람 마음은 비추지 못하네.

만약 속마음을 몽땅 환하게 비춘다면

응당 알겠거니와 경포대 위에 머물 사람이 드물 것이네.



한편 장성군은 청렴문화체험교육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이 달의 청백리’를 선정하여 군청 공무원이 월례조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황희·맹사성·이원익·이황·이항복 등 총 14명의 청백리가 선정되었다.

청백리 밥상도 만들었다. 고기와 생선이 없는 채식위주의 소찬이다. 먹어 보니 배가 조금 고프기는 하나 소박과 절제의 의미가 깊다.

청렴전시관도 만들어진다. 장성의 청백리뿐만 아니라 조선의 청백리, 세계의 청렴 사례도 소개함으로써 부패 추방 운동의 메카를 꿈꾸고 있다.

아울러 장성군은 호국(護國)코드도 각인하고 있다. 임진왜란 남문창의, 기우만·기삼연 등의 한말 의병장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활발하다.

청렴과 호국.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이다. 이런 가치를 관광·교육·힐링과 융합하여 창조경영을 꾀하는 주식회사 장성군. 그야말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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