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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와 송강 정철

 

   송강 정철  생가터  -청운 초등학교 입구 도로변 

  고산 윤선도 생가터 -  종로구   연화방  (지금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안  )  

   윤선도 집터  -명동성당 정문 앞

  윤선도 집터 - 명동 성당 정문 앞

 

  고산 윤선도( 1587-1671)와  송강 정철(1536-1593)은 우리나라  말로 가사와 시조를 지은  우리나라  시가 문학의  쌍벽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남도에서  대표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정철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담양 (예전의 이름은 창평)에서

 윤선도는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를  해남과 완도에서 지었다.

 

 두사람이 다른 점은  정철은 서인이고 윤선도는  동인에서 가지를 친 남인이라는 점이다.

 이 두사람의  인연은  정여립 사건의 죄상을  다룬 기축 옥사와 관련이 있다. 윤선도는 기축옥사의 피해자들과 관련이 있고,

 정철은 이들을  심문한  최고 책임자이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함평 자산서원에 배향된 정개청 관련 송준길과 윤선도의 논쟁 )

 

 아무튼  우리말의 조형성을 가장 아름답게 꾸민 두 대가의 작품이  모두 남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남도문화의

 긍지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