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 연구

 

 고산 윤선도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고산 윤선도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는 주로 문학, 특히 시조에 치중되어 있다. 그의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연구가 주로이다.

 

 그런데  그의 연구는  17세기 정치사적 입장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즉    광해군 시대, 인조 반정, 효종과  현종 시대를 거치면서 전개되는 정치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왕권 강화와 신권 유지, 서인의   권력 독점 상황에서 남인의  몸부림. 이런 상황을  읽어 내면서

그의 위치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 한 바로는 그는  남인의 초 강경파이었다. 그는 언제나 분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었다.  광해군때 당시의 최고 실세 이이첨을 탄핵하는 병진소가 그렇고,  효종  붕어 이후 예송 논쟁(기해예송)에서도  그의 예론소가 정치판을 뒤흔들게 하였다. 세가 약한  그는 이런 논란에서 항상 희생이 되어 번번히 귀양을 가게 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주장이  다 드러맞게 된다. 

방송작가 신봉승의 글 처럼 그의 직언은  죽음 을 각오한 것이었고, 언제나 임금을 위한 왕권 강화를 위한 것 이었다.

 

그에 대한 재조명  두번째는 그의 의약적  실력이다. 그는 의약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여 궁중에서 그 일을 하기도 하였다.

세번째는 풍수지리에 능한 점도 재조명되어야 한다. 훗날 정조임금이 수원 성 축조에 효종임금의 능을 수원에 만들자는 그의

주장을 크게 참고한 점도 부각되어야 한다. 

 

나는 요즘 고산 윤선도를 통하여  조선  중기 (광해군에서 현종 까지의) 역사를 다시 한번 읽고 있다.

 

 

       

'고산 윤선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우가 중에 물 (水)  (0) 2008.03.06
윤선도와 송시열  (0) 2008.03.05
고산은 지명이다.  (0) 2008.03.03
연적을 노래함  (0) 2008.03.02
이야기가 있는 문화관광  (0) 2008.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