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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러시아 여행

폴란드 유태인 학살 - 영화 피아니스트

유태인 대학살을 그린 영화는 사실 많다. 비교적 최근작으로는 <인생은 아름다워> 그리고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정도가 쉽게 생각난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약간의 희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여기서 희비극이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아마도 희극을 가장한 비극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쉰들러..>는 철저히 심각한 드라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는 한편, 하나의 공통점에서 만나는데 그것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쉰들러..>는 독일인을- 한 ‘선한’ 독일인을 주인공으로, <피아니스트>는 유태인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쉰들러 리스트처럼, 함부로 눈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때 이 반지를 팔았더라면 한 명의 유태인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하며 쉰들러가 흘리는 눈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웃어야 하는지 공감해야 하는지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스필버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영화를 보듯 그렇게 <쉰들러..>를 심플하게 관람해야 하는지, 아니면 좀더 역사적인 시각을 가지고 봐야 하는지 명확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쉰들러’의 그 휴머니즘적인 얼굴에 공감의 박수를 보냈을지 모르지만, 퍽 많은 사람들은 그 얄팍한 드라마의 표피에 오히려 역겹다는 반응을 보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의 장점은, 지극히 한 개인의 모습을 차분히 따라간다는 겸손함이다. 연주자인 ‘슈필만’은 유태인에게 닥쳐온 온갖 고통을 겪지만, 결국 그 속에서 독일군이 퇴각할 때까지 살아남는다. 그 과정이 후반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떤 관객에게는 조금 지루할 지도 모른다. 슈필만이 좁은 방 안, 은신처에서 세월을 보내고 영양실조와 황달에 걸려 사경을 해맬 때, 그리고 폐허 이곳저곳으로 전전할 때 그의 긴 수염과 덥수룩한 모양을 보면서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후 독일장교와 일대 일로 맞닥뜨렸을때, 그는 멋진 쇼팽의 녹턴 한 곡으로 장교를 회유하고 (그럴 의도가 없었을 지라도 어쨌든 장교의 마음은 눈녹듯 녹아내린다) , 결국 독일장교가 그의 목숨을 살려주며 이 영화를 해피 엔딩으로 끌고 가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허허실실 허망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너무 쉽잖아!’

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슈필만은 어쨌든 그 독일장교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축복받은 이름 때문인지 (독일어로 슈필만은 play 라는 뜻의 슈필과 man 의 만이 합쳐진 성(姓)이다. playman! ) 쇼팽의 피아노 곡을 연주함으로서 목숨을 건지게 됐다. 영화에서는 그 독일군 장교가 그냥 이유없이, 피아노 연주를 듣고서 그를 살려준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실은 독일장교가 퇴각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가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고는 살려준 것일지도 모른다. (뒤에 장교가 자기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에서 보듯.) 어쨌든 유태인의 씨를 말리고자 했던 독일군의 한 장교가 유태인피아니스트를 살려줬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역사적인 논의는, 지극히 사사롭고 개인적인 곳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역설적으로 더 심도있게 드러날 수 있다. 슈필만이라는 주인공 피아니스트는 정말로 운좋게 살아남아 2000년의 세상까지 보고 죽을 수 있는, 역사의 증언자가 되었지만, 가스실에서 죽어갔던, 그리고 총구 앞에서 죽어갔던 수 많은 유태인들에게도 역시 자신들만의 역사는 있게 마련이다. 학살되었던 50만의 유태인들에게는, 즉 50만개의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50만개의 역사는 거대한 한 개의 역사를 더 생생히 증언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쨌든 이 영화는 유태인의 시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 때문에든 독일장교가 피아니스트의 목숨을 살려줬다고 해도 우리는 그의 선의를 영화속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독일군은 영화속에서 완전히 악당으로 그려지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미덕은 여전하다. 함부로 거대한 역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거만하고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쉰들러..>가 역사에 대해 결론내리려고 했던 성급한 제스춰를 떠올린다면 <피아니스트>의 장점은 드러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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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이름을 폴란드에서 게토지역을  가 본 비오는 9.10 월요일 아침에 관광안내원으로 부터 소개 받았다. 

 9.9 일요일에 아유슈비츠를  간 우리는 그날도 비가 내렸다. 비는  잔혹하게 죽은 영혼들을 위한  연주곡이라고나 할까.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 .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련다.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빌려야 겠다.  그리고  유태인의

수난사를 다시 한번 공부하련다.

 

 

 

폴란드 바르샤비의 게토지역의 유태인 추모비.  이곳에서 1970년 12월 7일  서독 브란트 수상이 무릎을 끓고  사죄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