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 뺀 이지적인 여인 추구
송혜교 연기 흡인력 뛰어났지만
예상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 한계
입력시간 : 2007.06.05 23:48 / 수정시간 : 2007.06.06 05:28
- 사실 ‘황진이’ 입장에서는 부당할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재미와 성취는 평균 이하라고 폄하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6일) 개봉하는 이 대략 70억원짜리 사극 블록버스터에 쏟아진 온갖 인터넷의 악담이나 험구(險口)는, 아무리 양반 출신 기생의 강단이라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감정적 배설에 가까운 것이 많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마구잡이식 돌팔매가 끊이지 않았을까. 핵심은 장윤현 감독이 빚어낸 황진이(송혜교)가 ‘대중’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 ‘황진이’를 이끌어가는 두 축은 성장드라마와 멜로드라마다. 하나는 세상물정 모르던 양반집 규수가 자신의 의지대로 세파를 헤쳐나가는 꿋꿋한 여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또 하나는 종놈 출신으로 화적떼 두목이 된 놈이(유지태)와의 가슴 아픈 사랑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장윤현의 황진이는 섹시함을 제거하고 이지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했다. 분명 일반 관객이 알고 있던 고정관념 반쪽을 탈피한 ‘새로운 황진이’다. 황진사댁 별당아씨인 줄 알았던 자신이 사실은 종년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황진이는 양반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까발리겠다고 결심한다. “세상을 내 발 아래 두겠다”는 야심까지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영화는 양반집 규수로서 그의 예의바른 몸가짐에 유난히 강조점을 찍고, 송도 색주가인 청교방의 기생으로 들어간 뒤에도 육체의 매력보다 지성의 매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강조한다.
문제는 이 ‘새로운 황진이’를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방식이 별로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황진이’의 관람 등급은 18세 이상이 아니라 15세 이상. 가장 손쉽게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출을 포기하고 ‘이지적인 황진이’를 선택했다면, 이 일차원적 유혹을 능가할 만한 입체적 서사와 재미를 마련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을 크게 어긋나지 않는 플롯과 평면적 캐릭터로 2시간 20분을 비장하게 일관한다. 이는 송혜교와 유지태의 연기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사실 송혜교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놀라운 집중력으로 이 새로운 황진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자신을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네 총각의 관 위에 자신의 치마를 덮어주며 명복을 기원할 때, 옥문을 사이에 두고 놈이와 손을 마주잡을 때의 송혜교 연기는 대단한 흡인력을 지녔다. 유지태 역시 특유의 성실함으로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고, 둘의 사랑을 질투하는 사또(류승룡) 역시 작지 않은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지배한다. 그러나 배우 연기의 크고 작은 성취와 상관없이, 아쉽게도 ‘상업영화 황진이’가 지닌 재미는 큰 매력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홍석중의 동명 소설이 원작. 눈 덮인 금강산에 올라 해원(解怨)과 명복(冥福)을 비는 이 영화의 라스트신은, 실제 이 명산의 기암괴석과 황진이의 내면풍경이 절묘하게 포개지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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