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천년학’의 사랑 이야기
정수완·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입력 : 2007.04.17 23:15
입력 : 2007.04.17 23:15
- 정수완·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
- 작년 한창 인기 있던 드라마 ‘황진이’를 즐겨보던 친구가 있었다. 주인공들이 한시(漢詩)로 나누는 사랑이 너무 로맨틱해서 매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좋아하는 사람을 먼 발치에서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전부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하고, 밤새 고치고 고쳐 쓴 편지를 전하지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진을 찍어 보내고, 문자로 매시간 사랑을 확인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답답한 사랑의 방법인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느린 옛사랑의 방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주말에 ‘천년학’을 보았다. 올해로 70세를 맞은 임권택 감독은 그의 100번째 영화에서 세상 모든 풍파를 겪어낸 노장만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완성해냈다. ‘천년학’에는 사랑이 참 많다. 눈먼 누이가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동생의 마음이 사랑이고, 모랫바람이 이는 중동에서 고생할 동생을 생각하며 보이지 않으면서도 중동의 한국인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이 누나의 사랑이다. 남들은 명창을 만들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비를 욕하지만 자식을 명창 만들 자리에 묻히길 바라는 것이 아비의 사랑이다. 아이를 고아 만들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식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아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목에 가시가 걸린 짝사랑의 여자를 들쳐 업고 맨발로 십리 길을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누구도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지만 영화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을 잘 아는 노 감독이 그린 사랑이야기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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