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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김세곤의 반(反)부패칼럼]목민심서톺아보기(8)-제2부 율기6조 칙궁(몸가짐을 단속함)(6)

[김세곤의 반(反)부패칼럼]목민심서톺아보기(8)-제2부 율기6조 칙궁(몸가짐을 단속함)(6) 

  • 기자명 김세곤/역사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등록 청렴전문강사
  • 입력 2025.01.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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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역사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등록 청렴전문강사 

『목민심서』 제2부 ‘율기 6조 제1조’의 칙궁(飭躬)은 이어진다.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에, “임금 섬기기를 나의 어버이 섬기듯 하고, 아전들 대하기를 나의 노복(奴僕)처럼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나의 처자(妻子)처럼 하며, 공무 처리하기를 집안일처럼 한 뒤에야 내 마음을 다한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다면 이는 다 내 마음을 다하지 않은 바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매양 한 가지 일을 당할 때마다 선례만 좇아서 시행할 것이 아니요, 반드시 법도의 범위 안에서 편의하게 변통할 것을 생각하여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법도가 국가의 전장(典章)이 아니면서 현저히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고치지 않을 수 없다.

한위공(韓魏公)이 개봉부(開封府)의 추관(推官 형사사건 담당 관리)이 되어, 일을 처리함에 게으르지 아니해서 더운 철에는 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부윤(府尹) 왕박문(王博文)이 중히 여겨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요로(要路)가 앞으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백성 다스리기를 이와 같이 하니 참으로 재상의 그릇이다.” 하였다.

 
 

(한위공은 송(宋)나라 신종 때 명신 한기(韓琦)인데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다. 벼슬은 사도(司徒)ㆍ시중(侍中)을 지냈다. 왕박문은 송(宋)나라 진종(眞宗)때 사람으로 벼슬은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에 이르렀다.)

오늘날 사람들로서 옥당(玉堂 홍문관의 별칭)ㆍ은대(銀臺 승정원의 별칭)를 거쳐 지방관이 된 이는 망령되이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잘한 일은 직접 돌보지 않고 말하기를,

“문신(文臣)의 정사하는 체모는 음관(蔭官 : 부조(父祖)의 공덕(功德)으로 얻은 벼슬이다. 공신 또는 당상관(堂上官)의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임용하였다. 음직(蔭職)ㆍ음사(蔭仕)라고도 한다)과 다르다.”

하여, 바둑이나 시로써 스스로 즐기며, 정사는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 생민들을 괴롭히니, 이와 같은 자는 위의 이 조문(條文)을 읽어야 할 것이다.

정선(鄭瑄)이 말했다.

“하늘은 한 사람을 사사로이 부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뭇 가난한 자들을 그에게 부탁하려는 것이요, 하늘은 한 사람을 사사로이 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뭇 천한 자들을 그에게 부탁하려는 것이다. 빈천한 사람은 제힘으로 먹고살면서 제 일을 경영하여 제 피땀으로 제가 먹으니 하늘이 살펴봄에도 오히려 너그러울 것이요, 부귀한 사람은 벼슬을 가지고 녹을 먹되 만민의 피땀을 한 사람이 먹으니 하늘이 그 허물을 감독함이 더욱 엄중할 것이다.”

(정선은 중국 명(明)나라 의종(毅宗) 때 사람으로, 1631년에 진사(進士)를 하여 벼슬이 응천순무(應天巡撫)에 이르렀다.)

한지(韓祉)가 감사로 있을 적에 매양 막료(幕僚)들이 조알(朝謁)을 오면, 쟁반을 내려 주고 술을 돌린 다음에는, “내가 어제 한 일 가운데 무슨 허물이 있었는가?”하고 물었다.

막료들이,“없었습니다.”대답하면, 정색하고 말하였다. 

“ ‘세 사람이 길을 가는 데에도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하였는데, 10여 명의 의견이 어찌 내 의견과 똑같을 것인가. 제군(諸君)은 우선 말하라. 말해서 옳으면 좇을 것이요, 그르다면 서로 논란을 다시 하면 또한 깨우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 데에도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은 공자  (孔子) 말씀으로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본받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잘못을 고쳐야 한다[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이처럼 날마다 묻기를 상례(常例)로 하니, 여러 막료들이 미리 강구해  가지고 들어가서 고하였다. 그 말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면 비록 매우  중요하여 고치기 어려운 일이라도 선뜻 자기 의견을 버리고 그에 따랐으며, 언제나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