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46) 조선정판사 위폐사건(朝鮮精版社僞幣事件)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 저자 )
1946년 3월의 위조지폐단 검거에 이어, 5월 15일에는 조선공산당이 조직적으로 위조지폐를 발행한 조선정판사위폐사건(朝鮮精版社僞幣事件)이 터졌다.
정판사는 원래 일제 강점기에 근택인쇄소라는 이름으로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곳이었는데, 해방이 되자 조선공산당이 재빨리 접수하여 조선공산당 본부 간판을 걸고 「해방일보」를 발행하였다.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자. 1946년 5월 4일 한 위조지폐단이 뚝섬에서 검거되었는데 김창선, 이재광등 16명이었다. 그런데 김창선은 조선공산당 당원이었으며 조선정판사에서 평판(平版) 담당 기술자였고, 나머지 정판사 직원 14명이 검거되면서 이 사건은 엄청난 시국사건으로 치달았다.
이러자 「조선일보」 · 「서울신문」 · 「동아일보」는 ‘경찰의 조선 정판사 위폐사건 진상 발표’를 일제히 보도하였다.
“3백만 원 이상의 위조지폐로써 남조선 일대를 교란하던 지폐위조단 일당이 일방타진 되었다고 조선경찰 제1관구경찰청장 장택상씨가 발표하였다. 경찰보고에 의하면 이 지폐위조단에는 16명의 인물이 관련되었는데 조선공산당 간부 2명, 조선정판사에 근무하는 조선공산단원 14명이라고 한다.
이 지폐위조단의 소굴인 「해방일보」를 인쇄하는 조선정판사 소재지 근택 빌딩은 조선공산당 본부이다. 이 근택빌딩에서 지폐를 위조하였는데 상기 공산당 간부 2명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나 이미 체포장이 발포되어 있는 중이며 그들은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조선공산당 총무부장겸 재정부장 이관술(40세)과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45세)이다.
경찰당국의 말에 의하면 이 위조단은 절취한 조선은행권 평판을 사용하여 위조지폐를 인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지폐를 인쇄한 용지도 일본 것으로 조선에서 생산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이와 동일한 용지가 위조지폐가 최초로 출판하기 전에 인천부두에서 도난을 입었다고 한다.
이 평판은 작년 9월에 100원 지폐를 인쇄하기 위하여 조선은행으로부터 조선정판사에 이전되었는데, 이후 은행에서는 그 평판을 조선도서주식 회사로 이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이 평판을 이전하는 중에 행방불명된 것이다. 경찰에서는 분실되었던 평판 9개를 발견하였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위조지폐 3백만 원의 대부분은 근택 빌딩 지하실에서 위조된 것이라고 한다. 경찰은 평판의 잔해인 듯한 철재와 지폐 인쇄에 사용되는 평판 초크염료 잉크 기타 제 재료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김기협 지음, 해방일기 3, 너머북스, 2012, p 270-271)
그런데 5월 16일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정판사 위조지폐사건에 조선공산당이 개입하였다는 미군정의 발표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이는 단순한 위조지폐 사건을 좌익세력 탄압을 위하여 조작 확대한 것이라고 항의성명을 발표하였다. (강준만 저,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 편 제1권, 인물과 사상사, 2017, p 243)
한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조선정판사위폐사건’을 그대로 읽어보자.
“1945년 8·15 광복 이후 여러 정치세력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공산당은 일제가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근택(近澤)빌딩을 접수하여 조선정판사로 개칭하고, 이를 위조지폐 발행장소로 사용하였다.
그들은 재정난으로 인하여 당 활동자금 조달방책을 모색하고 있던 중 조선정판사에 지폐 원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당원인 박낙종 (조선정판사) 사장에게 그들의 계획을 알렸다.
박낙종은 같은 곳에서 근무하던 공산당원 김창선(金昌善)에게 당 재정부장 이관술(李觀述)과 당 중앙집행위원이며 해방일보사 사장인 권오직(權五稷)의 지령을 전하였다.
1945년 10월 20일 서울시 소공동 74번지에 있는 근택빌딩 내 조선정판사 사장실에서 사장 박낙종, 서무과장 송언필(宋彦弼), 재무과장 박정상(朴鼎相), 기술과장 김창선, 평판기술공 정명환(鄭明煥), 창고계 주임 박창근(朴昌根) 등이 비밀리에 모여 위조지폐를 인쇄, 공산당에 제공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오후 7시 공장종업원들이 퇴근한 뒤 김창선이 평판과장으로 있을 때 절취, 보관하고 있던 100원권 원판(징크판) 등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위조지폐 1,200만 원을 위조하여 이관술에게 제공, 공산당의 활동비로 사용하게 하였다.
출처 불명의 위조지폐가 나돌아 경제를 혼란시키자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여 김창선이 지폐 원판 1매를 서울오프셋인쇄소윤석현(尹奭鉉)에게 보관시킨 것을 탐지하고 범인체포에 나서 1946년 5월 4일과 5일 중부경찰서(당시 本町 경찰서) 형사대가 이재원 등 일당 7명을 체포하였다.
이어 그들의 자백에 의하여 5월 7일 공산당원 16명 중 간부 2명을 제외한 14명을 체포하였다. 공산당측에서는 5월 17일 성명을 발표하여 구속된 정판사 직원 14명을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변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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