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4)김시습, 남효온 · 김일손에게 ‘단종애사’를 전해 주다.

순례자의 노래 (4)

- 김시습, 남효온 · 김일손에게 단종애사를 전해 주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55년에 중흥사를 떠난 김시습(14351493)은 강원도 김화(金化) 사곡촌(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초막동)잠시 머물렀다. 이 때 조상치가 1457년에 영월로 유배 간 단종이 읊은 자규사(子規詞)를 전해 주었다. 이윽고 조상치는 자규사를 읊었고, 김시습, 박도 등 영해박씨 일곱 명 이 조상치의 자규사를 차운하여 읊었다. 그런데 후환이 두려웠던 이들은 시문들을 모두 불태우거나 강물 위에 떠내려 보냈다.

 

이로부터 33년이 지난 14909월에 55세의 김시습은 중흥사 모임에서 36세의 남효온(14541492)26세의 김일손(14641498)에게 조상치가 읊은 자규사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사실은 김일손이 지은 탁영선생문집조상치의 자규사에 차운하다의 세주(細註)에 나온다.

 

동봉 김시습과 둔수 박도가 조상치의 운에 화답하고, 동봉이 나에게 읊어 전하므로, 나도 그 운에 차운하였다. 경술년 (1490)”

(김일손 지음, 김학곤 · 조동영 옮김, 탁영선생 문집, 탁영선생숭모사업회, 2012, p 384-387)

 

여기에는 맨 처음에 김일손이 지은 조상치의 자규사차운시가 나오고, 그 다음에 조상치와 김시습 그리고 박도의 자규사가, 그 뒤에는 단종의 자규사와 김일손의 차운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 조상치가 강원도 철원에서 읊었던 자규사부터 음미해보자.

 

 

소쩍새(자규)가 운다 소쩍새가 울어 子規啼 子規啼

달 밝은 밤 빈산에서 무엇을 호소하나 夜月空山何所訴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감만 못하다지만 不如歸 不如歸

파촉산을 바라보며 날아가고 싶을 뿐이네 望裏巴芩飛欲度

다른 새들은 모두 둥지에 안주하건만 看他衆鳥摠安巢

어찌 너만 꽃가지에 마냥 피를 토하느냐 獨向花枝血謾吐

 

자규는 소쩍새이다. 또 다른 이름은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신하에게 쫓겨난 촉나라 임금 두우가 슬피 울며 죽어서 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그 새를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귀촉도(歸蜀道)라 불렀고, ‘돌아가지 못한 혼이라 하여 불여귀(不如歸)라고도 불렀다.

런데 소쩍새는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소쩍 소쩍하며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두견화(杜鵑花 진달래꽃)가 되었다.

 

조상치의 자규사는 이어진다.

 

그 얼굴 외롭고 모습도 초췌하여라 形單影孤貌憔悴

우러르고 높이기는커녕 그 누가 너를 돌보겠니 不肯尊崇誰爾顧

슬프다! 인간 세상의 원한이 그 어찌 너뿐이리오 嗚呼人間寃恨豈獨爾

의사와 충신들의 강개하고 불평한 마음이야 義士忠臣增慷慨激不平

손꼽아 이루다 셀 수 조차 없다네 屈指難盡數

 

김시습이 따라 불렀다.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가 울어 子規啼 子規啼

달이 진 하늘에다 무엇을 호소하듯 月落天空聲似訴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감만 못하다지만 不如歸 不如歸

서쪽으로 아미산만 바라볼 뿐 어찌 넘지못하나 西望峨嵋胡不度

나무에 매달려 괴롭게 울고 사표(謝豹 두견새의 또 다른 이름)를 부르며

懸樹苦啼呼謝豹

꽃가지에 점점이 슬픈 피를 토하네. 點點花枝哀血吐

깃 떨어진 채 쓸쓸히 돌아갈 곳도 없는데 落羽蕭蕭無處歸

뭇 새들도 우러르지 않고 하늘도 돌보지 않으니 衆鳥不尊天不顧

일부러 한 밤중에 소리없이 불평을 쏟아내어 故向中宵幽咽激不平

부질없이 외로운 신하 적막한데 空使孤臣寂寞

깊은 산에 남은 시각만 헤아리게 하네 窮山殘更數

 

박도(전 병조판서 박계손의 부친)도 따라 불렀다. 김일손의 탁영선생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가 울어

목이 매도록 슬피우니 그 무엇을 호소하는듯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감만 못하다지만

돌아가려 해도 파촉의 협곡 넘을 수가 없네

산은 비고 달은 졌는데 밤은 어찌 그대론지

꽃에다가 피를 뿌려 슬픈 원한을 토해 내네

가지에선 뛰고 잎속엔 숨어 소리마다 괴로운데

서쪽도 동쪽도 아닌 오직 북쪽만 돌아본다.

슬프다, 이 소리 듣는 이 눈물 금치 못하게 하네

초혼(楚魂 귀촉도의 또 다른 이름)이 사철나무에서 우니

일반적인 한을 천고에 헤아려 보노라

 

김시습의 이야기를 들은 김일손은 사무쳤다. 그는 즉석에서 조상치의 자규사에 차운하여 읊었다.

 

소쩍새가 운다 소쩍새가 울어 子規啼 子規啼

긴 밤 깊은 산에서 자신을 호소하듯 永夜窮山空自訴

돌아감만 못하다 돌아감만 못하다지만 不如歸 不如歸

하늘에 닿은 저 촉령을 어찌 넘으랴 蜀嶺連天那可度

꽃가지에 물든 색 검붉은 것 보니 花枝染着色殷紅

만사에 상심하여 심혈을 토한 것이리 萬事傷心心血吐

뭇 새들 지저귀며 봄을 함께 다투는데 啾啾百鳥共爭春

너만 홀로 슬피 울며 사방을 돌아보니 爾獨哀呼頻四顧

별 뜨고 달이 지자 그 울음 더욱 슬퍼라 已而參橫月落聲轉悲

고운 임 생각에 눈앞이 아득하고 숨만 가빠 懷佳人兮目渺渺氣激激

외로운 신하는 홀로 된 과부인양 하염없이 곡한다오. 孤臣寡婦哭無數